1964년에 출판된 하기노 토시오(萩野敏雄)씨가 쓴 ‘조선·만주·대만임업발달사론’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 있다. 

“국유임야의 원목생산 부문인 벌채사업은 반은 관직영으로 실행하고 반은 여러가지 사정에 따라 민간사업에 위임하여 시행하였는데, 미간업자의 벌채사업은 영리를 주로 하고 작업기술도 역시 유치하기 때문에 임목의 집약적 이용 및 적지갱신의 완벽을 기하기 어려워 운재시설과 같은 자본력의 관계상 항구적 시설이 부족하고 사업실행에 대해서도 업자간의 연락 통제가 결여되어 인부 및 役牛 등의 쟁탈을 발생시켜 자재 및 노력을 낭비하니, 따라서 목재의 생산원가를 앙등시키는 등 불합리, 비경제적인 것이 많아 시국상 서둘러 개선쇄신할 필요가 있다.

”“조선내 제재공장은 일부 관영일지라도 나머지 대부분은 민영으로 하였고 만주사변이래 목재계의 호황에 따라 전선 각지에 마구잡이식 설치를 계속 보았다. 또 그 대부분은 설비조잡, 부정비로 인해 동력, 기재 및 노력을 낭비하는 것이 많고 원료부족을 激成하여 늘 사업경영사에 안정을 缺한 실상에 있다. 덧붙여 가장 긴밀한 연락을 필요로 하는 원목생산업자 간에도 거래상 자칫 상극을 야기하는 등 공연히 생산원가를 앙등시켜 시국하 계획경제 수행상 지장이 적지 않은 현상이 되었다.”“

…(중략)이들 업자간에는 각각 사익 옹호를 위하여 업종별 또는 업태별 임의조합이 결성되었지만 그 형태 등이 난잡할 뿐만 아니라 조합 상호간 연락이 거의 결여되고 나아가서는 목재의 취급을 쓸데없이 복잡하게 하였다…(이하생략)”이라고 쓰여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8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구석이 있음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8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 목재산업은 타시장에 비해 생산, 유통, 수익 구조면에서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일제 치하에서 국유림이 해체되고 영세한 사유림 소유구조로 바뀌기까지 이 땅의 목재수급과 이용역사를 훑어보면 근대에 들어서면서 공업화되기까지의 목재이용은 우리의 손에 의해 계획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침략정책의 과정에서 치밀하게 계획된 목재수탈역사 그 자체인 것이다. 아직도 그 잔재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애통할 뿐이다. 

목재의 이용역사는 인류와 함께 시작하고 인류의 멸망과 함께 할 것이다. 

목재를 단순히 사고 파는 것이 아니라 목적에 맞는 기술을 팔아야 한다. 최고의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다. 정보나 자금력 우위로 사업을 하는 시대는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렵다.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는 것만이 목재산업을 지탱시켜 줄 것이다.

 그런 기업에게 목재는 더 이상 사양산업이 아닌 환경시대와 더불어 성장할 수 있는 매력있는 산업으로 비춰질 것이다. 기술개발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쪽 모두 필요하다. 다시 말해 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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