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나무를 벌채하는 행위는 환경론자들의 논쟁거리임에 틀림없다. 목재를 얻기 위한 벌채 = 환경파괴  즉 숲의 파괴라는 간단한 등식이 성립되어 산에 심어진 나무는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사고가 자리한다.

그렇다면 왜 산에 나무를 심는가 하고 자문해 볼 수  밖에 없다. 우선 논에 심는 벼는 환경을 위해 심는 것인가? 아니다. 식량 때문이다. 먹기 위해 벼를 심을 뿐 환경을 위해 심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경을 위해서 벼를 베지 못하게 하면 어떻게 될까? 
  
산에 나무는 왜 심어야 하는가? 지구환경을 위해서 일까? 아니다. 의식주 중에 주를 해결하기 위한 건축용재를 생산하는 행위라고 봐야 한다. 사방이나 풍치조림 등 특별한 목적 말고는 목재생산을 위해 나무를 심는다. 생산을 하려면 벌채해야 함도 자명하다.

 조림 행위는 환경보호 즉 지구온난화방지를 위해 처음부터 행해진 노력이 아니다. 어느 나라도 지구온난화방지를 위해 스스로 조림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제협약으로 온난화를 일으키는 산업주체에 대해 즉 탄산가스를 배출하는 양 만큼에 대해 조림을 의무화하도록 하는 조약을 만들고 시행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것이 도쿄의정서의 핵심내용이다. 
지구상에서 탄산가스를 가장 효과적으로 그리고 대량으로 고정해주는 장치는 다름이 아닌 나무성장이다. 나무성장량에 비례하여 탄소고정능력이 커진다. 

제때 베어내야 쓸만한 나무가 많아진다는 생각은 누구나 갖기 쉽다. 심어놓고 전혀 관리하지 않은 산림은 나무가 성장하지 않는다. 성장하는 산림에 비하면 탄소고정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솎아주어야 즉 간벌을 해야 남아있는 나무의 성장이 보장되고 탄소고정능력 즉 대기정화능력도 커져 지구환경보존에도 일조를 하게 된다. 

환경론자가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매일 청사 앞에서 간벌예산을 늘리라고 시위할 터인데 말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나무가 노령기에 접어들면 탄소고정능력도 저하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림-간벌-벌채-재조림의 순환사이클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목재를 사용하기 위해 하는 벌채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벌채의 행위는 환경보존에 중요한 요소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목재회사에 다니는 분들이 내가 하는 일이 혹시 환경에 부담을 주는 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은 이제 지워버리자. 건축재료 중 목재만큼 친환경적 재료는 없다. 재생산 할 수 있는 재료는 더더구나 없다. 가공단계에서도 비교할 수 없는 낮은 에너지 사용과 탄산가스 배출을 한다.

목재를 건축재료로 사용하는 행위자체만으로도 환경에 일조하고 있다. 프라이드를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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