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인천 만석동에 "조선목재 공업주식회사"라는 제재소 자리에, 1942년 "대성목재공업주식회사"라는 합판공장을 만든 것이 오늘날의 대형합판공장이 된 것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대성목재 공업주식회사는 초창기 소규모의 합판공장으로서 콩풀을 사용해서 합판을 만들다가 60년 일산 10,000매 공장으로 늘리고 61년 천우사 전택보씨가 인수하면서부터 일산 42,000매 규모의 큰 합판공장이 되었고, 65년에는 최초로 필리핀에 주재원을 파견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필리핀에서 주로 원목을 구입하였는데,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기에는 힘들은 직경 1m정도 되는 불그스레한 라왕원목이 한 달에 4배씩이나 인천 앞바다에 들어오곤 하였다.그 때는 내노라 하는 종합상사도 없었고, 서울상대 출신들이 은행보다 천우사라는 무역회사를 더 선호하는 시절이었는데, 천우사에 입사한 엘리트들이 대성목재에 근무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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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을 필두로 해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 주재원을 파견하기 시작하였고 모두 서울 상대 출신들이 주재원으로 나가는 게, 통상화 되다시피 했다. 그 때는 외국에 나가기도 힘들은 시절이었고, 주재원으로 나가는 것이 영광이기도 한 시절이었다. 대성목재는 근로자가 3,500여명이었는데, 대성목재 월급날이면 인천시내가 술렁이고, 술집, 음식점들이 좋아하던 시절이었다. 65~66년 당시 3,500여명 이면, 90년대초 삼익악기, 영창악기 등이 5,000명인 것과는 대조가 안 되는 것이었다.

전택보 회장 대성목재 월미공장 건설
당시 대성목재에 일반공으로 취직하려면, 브로커에게 일만원씩 주고 취직을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종업원 월급이 삼만원 정도 할 때이니 알만도 하지 않은가. 당시에는 미국이 엄청난 양의 합판을 수입하였는데 필리핀,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는 원재료는 있으나, 합판공업을 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으므로 비교적 원재료 국가와 거리가 가까운 일본, 한국, 대만 등에 합판공업을 육성시켜, 합판을 만들게 하고, 자기들은 그 합판을 수입해 갔던 것이다.

합판공업이 육성될려면, 그 주위공업도 같이 발달되어야만 한다, 예를 들면, 수지공업, 샌드페이퍼공업, 나이프공업 등등, 당시 일본은 합판기계공업도 함께 육성되어, 우리나라 합판공장의 기계들은 거의 일본에서 수입되었다. 66년에는 일본은 올림픽을 개최하였고, 당시 동경에는 지하철이 동서남북으로 빽빽히 있었던 시절이었다. 합판산업이 한창 잘 될 무렵인 66년~68년 무렵인 것 같다. 당시 대성목재는 천우사의 전택보씨가 운영하고 있었는데, 미국에서 주문량이 폭주하자, 일산42,000매 규모의 만석동 공장으로서는 감당하기가 힘들게 되었고, 이렇게 돈벌이가 잘 되고, 국가산업에도 보탬이 되는 사업이 어디 있느냐고 정부에 건의하여 월미도에 일산 55,000매 규모의 합판공장을 차관을 받아서 건설하게 된다.

건설이 거의 완료되어가는 시점인 69年에 미국은 점차 주문량을 줄이기 시작하였고, 전사장은 차관 이자에 허덕이게 되었다. 정부에서는 장덕진씨(후일 농림부장관)를 팀장으로 하는 부실기업정리팀을 만들어, 대성목재를 조흥은행 관리업체로 만들고, 군부팀인 황필주 사장을 영입하여 운영하게끔 하였다. 그 후로 전택보 회장은 합판산업에서 손을 띄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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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통령과 동명목재 강석진 사장 부산에서 만나다
75년부터 78년 사이에 부산에 있는 동명목재는 일산 60,000매 규모의 이 합판공장을 일산 100,000매 규모로 늘리고 드디어 동명목재는 산업훈장 금탑상까지 타게 된다.

합판으로 돈을 벌게 된 강석진 사장은 동명목재 뒷산 전면을 불원이라는 이름으로 큰 절을 짓게 하고, 당시 외국에서 제일 좋은 대리석과 강원도에 있는 비싼 돌을 사 들이며, 당시 조각재로는 제일 좋은 마디카라는 나무를 수입 내지는 국내에 들어온 것은 모두 사들여 어마어마한 절을 짓고, 돈을 수십억씩 들였다.

그 소식이 부산시민에게 퍼지자 부산 여론이 나빠졌다. 아무리 개인 돈이라지만, 그렇게 흥청망청 써도 되느냐는 것이었다.그런 소문이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게 됐고, 당시 대통령인 박정희 대통령은 이 나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하여 부산에 내려와 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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