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판산업야사 <3>

1973년 대성목재는 군부출신인 황필주 사장이 물러나면서 신동아, 국제약품, 원풍의 세 회사가 인수하고 있었다.
당시 잡목계의 쌍두마차, 즉 양 거두로는 김종수씨(전 대신목재 사장, 현 대신목재 사장 김상훈씨의 부친)와 최득수씨(전 옥산실업 사장, 현 한국종합목재 최병길 사장의 부친)가 있었다.
이 두분은 이미 작고하셨지만, 당시 대성목재, 이건산업, 선창산업 등에 들어오는 잡목을 사서 동화개발 號에 저장해 놓고서 일반 시중에 판매하는 업을 주로 했었다.

잡목계의 쌍거두, 김종수 사장과 최득수 사장
Image_View당시 잡목이라는 것은 라왕원목을 들여오는 와중에 잘못 선적된 수종들로서 마디카, 사쿠라, 구루미 등이 주종을 이뤘고, 이들 목재에 대한 별도의 명칭은 없었고 통틀어 "잡목"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합판회사들이야 합판에 사용할 수 없는 원목이므로 부적재라고 판단해서 싸게 판매했는데, 김종수씨와 최득수씨는 이 나무의 용도를 알고 있었으므로 싸게 사서 시중에 비싸게 팔고는 했다.

어느 날 대성목재의 노 전무께서 영업부서에 불호령을 내렸다. 사연인즉, 왜 최득수씨에게 잡목을 싸게 팔았느냐는 것이었다. 김종수씨에게 팔라는 것이었다.
내막을 알아보니 영업부서에서는 최득수씨와 김종수씨에게 才당 170원의 가격을 제시했는데, 김종수씨는 160원을 주장했고, 170원을 동의한 최득수씨에게 낙찰이 된 채로 결재를 올렸던 것이다.

그런데 노 전무께서 결재하려는 순간, 김종수씨가 찾아와서 190원을 제시하고 자기가 사겠다고 말했던 것이다

Image_View당시 김종수 사장의 머리에는 어떤 상황판단이 있었을까? 여기서 우리는 김종수 사장의 앞을 내다보는 許生傳式 상술을 보게된다.

조선시대 박지원의 許生傳이라는 소설에는 許生이라는 상인이 장사술에 능해, 조선땅에 있는 말총이라는 말총을 몽땅 자기가 사서 갖고 있었다.
양반들이 갓을 만들어 쓰는 데는 말총이 필요한데, 전국 어디를 가도 말총을 가진 사람이 없어 구할 수가 없었다.

말총을 가진 사람은 허생 뿐이었는지라, 말총이 필요한 사람은 허생에게 가서 사다 쓸 수밖에 없었고, 값도 부르는 데로 줘야 했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김종수 사장은 인천에 있는 모든 잡목을 자기가 사게 되면, 전국 어디에서도 잡목을 구할 수 없다는 정보를 가졌던 것일까?
결국에는 여수, 목포, 대전, 춘천 등지에서 잡목을 사러오게 됐고, 김종수 사장이 부르는 값으로 팔게 됐다는 일화가 있다.

대성목재, "라민(Ramin)" 한 배를 수입하다.
73년 오일쇼크로 인해 갑자가 원목가격이 상승하자, 대성목재는 인도네시아 반잘마신에서 라민(Ramin)이라는 원목을 싸게 수입했다. 지금 같이 라민이 어떤 성질의 나무인 줄 알고 수입한 것이 아니라, 가격이 싸고, 합판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수입한 것이다.

6,000㎥짜리 한 배가 들어왔는데, 4,000본이나 실렸다. 계산해보면 한 본당 평균재적이 1.5㎥이다. 당시에는 평균재적이 5㎥, 6㎥에 달하는 라왕원목을 쓸 때이다.
다행히도 평균재적은 1.5㎥이지만 원목길이가 4m 안팎이어서 평균직경은 40~50㎝정도 됐다.

이것을 합판공장에 투입하니, 로타리에서는 릴링을 채우기 바빴다. 당시는 로타리 쟈크(chuck)가 5inch 정도일 때이므로 황박(sapwood) 빼고, 박심 빼고나면 단판이 나오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그렇다손 치고라도 공장의 안에서 일하는 모든 종업원들이 온 몸을 긁어대며 가려움증을 호소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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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민이란 수종의 원래 용도가 합판용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라민의 톱밥이 인체를 가렵게 한다는 것을 후일 문헌을 보고 알게 됐던 것이다.
또한 라민은 처음에는 수중에 뜨는 것 같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이 많았다.

합판에 계속 투입할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대성목재 실무진들은 이를 판매하기에 이르렀고, 당시 만석동에 있는 동양목재(현 동양목재산업)가 이를 사다가 플로링으로 만들어 판매했다.

동양목재산업은 우리나라 최초의 건조로(Kilndryer) 보유회사였고, 플로링을 만들려면 건조로가 있어야만 했다.
이는 서울 공대 출신의 안기우 상무(후일 대성목재 근무)가 동양목재산업 재직시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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