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_View전라남도 순천시의 송광면(松光面) 조계산(曹溪山) 서쪽에는 한국의 삼보(三寶)사찰 가운데 승보(僧寶) 사찰로서 유서 깊은 절인 송광사(松廣寺)가 있다. 이 절은 신라 말기에 창건 되어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도(道)와 선(禪)을 닦기 시작해 대찰로 중건했다.

1842년(헌종 8)에 큰 화재가 일어나 모든 건물이 불타 없어지고, 삼존불(三尊佛)·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금기(金器)·대종(大鐘) 및 기타 보물과 《화엄경(華嚴經)》 장판(藏板) 약간만을 건졌다. 이후 1920년대에 퇴락한 건물들을 중수하고, 1943~1956년에 승려와 신도의 노력으로 차례로 복원해 옛모습을 되찾았다.

이어 1983년부터 1990년까지 대웅전을 비롯해 30여 동의 전각과 건물을 새로 중수해 오늘과 같은 승보종찰의 모습을 갖춘 것이 송광사의 개략사이다.

송광사는 목조삼존불감(木彫三尊佛龕:국보 42), 국사전(國師殿:국보 56)을 비롯해 경질(經帙:보물 134), 경패(經牌:보물 175)등 수 많은 국가지정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조계종의 발상지로서 현재는 선수행(禪修行)의 도량이며, 조계총림(曹溪叢林)이 있는 곳이다.
2003년 5월 전남대학교에서 한국목재신문의 발행인인 윤형운님을 만나, 벌써 일곱번째 계속되고 있는 이 글쓰기를 처음 제안받았던 날은 토요일이었으며, 송광사 성보박물관의 부탁으로 경패에 붙은 수백년의 때를 벗겨주기로 약속한 날이기도 했다.

경패는 불경을 넣은 목함(木函) 곁에 달아서 내용물을 표시하는데 사용하던 것으로서, 원래 불경을 넣은 나무상자에 내용을 표기하는데 달아서 사용하던 것으로 상아와 고래수염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표면에 액(額)을 만들어 불경의 명칭과 번호를 새기고 가장자리에는 여러가지 문양으로 장식했는데, 그 문양은 덩굴, 학무늬 등 각양각색이다. 또 밑으로는 보살, 나한, 신장상 등을 돋을 새김했고, ‘정(貞)’, ‘주(周)’, ‘진(晉)’, ‘하(何)’ 등의 기호가 새겨져 있다. 그 중에는 여러 상 밑에 연꽃대좌 혹은 난간을 표시한 것과, 위에 장막 또는 격자무늬창을 조각한 것, 연꽃무늬를 새긴 것, 집의 모양을 조각해 그 안에 새긴 것 등이 있다. 측면(약 1㎝두께)에는 둥근 모양의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그 중 세 개는 뚫어새긴 것이다.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되며, 조각의 정교함이나 그 수법이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정교한 조각이 묻힐 만큼 두터운 먼지와 때를 얹고 있던 경패의 세척 과정은 목욕탕에서의 몸씻기와 거반 같은 과정이었다. 다만 여러가지 붓과 초음파세척기를 사용했으며 한꺼번에 다하지 않고 여러번 나눠 조심스럽게 씻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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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필자가 초대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으니, 그것은 상아와 고래수염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경패의 일부에 재질이 나무로 의심되는 것이 있다는 이유였다. 40여 점 중, 수 점이 나무로 만들어 진 것임이 확인됐고, 결국 그것을 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한 일 일수도 있었던 것이다. 칠이 벗겨진 틈에서 현미경으로 관찰된 목재조직이 아니었어도 충분히 식별할 수 있을 만큼 다른 경패에 비해 가벼웠으며 표나게 정교하지 않은 조각들에서도 차이가 확연했다.

경패 씻는 일을 마친 후 송광사 성보박물관 관계자들과의 대화 중에 얻었거나 자임한 몇가지의 숙제는 경질(經帙)의 재료가 대나무가 확실한지, 쌍향수(雙香樹)는 진짜 향나무인지, 비사리구시는 싸리나무로 만들었다는데 맞는지 하는 것들이었다. 식별결과 대나무, 향나무는 그러했으나 비사리구시는 싸리나무가 아니라 느티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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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의 첫 글(문화재 보존을 위한 과학으로서의 목재공학)에서 소개한 것 처럼, 문화재를 보존하는 일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문화재의 재질 만큼이나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갖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서, 필수적 소양과 기초가 준비된 전문인력들이 특정의 문화재를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각기 전문분야를 이뤄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화재는 그것에 선조들의 얼이나 행적이 담겨져 있는 문화유산 이라는 가치가 부여되지 않는다면, 그저 망가지고 썩은 낡은 물건이거나 세월의 잔해일 뿐일 것이다. 같은 재료와 형태의 것이었을지라도, 그것이 속해 있던 환경에 따라, 노화나 분해의 방식 뿐만아니라 형상도 제각각 독특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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