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판산업야사 <7>

Image_View1948년 성창기업을 창립한 정태상 사장(작고)은 봉화사람으로서 아들 넷을 뒀는데, 아들넷을 모두 合版工場 사장으로 만들었다.

본인은 성창기업을 운영하고, 맏아들 정해덕씨에게는 반도목재를 설립해 운영하게끔 했고, 둘째아들 정해수씨에게는 선창산업을 설립해 운영하게끔 했고, 세째아들 정해창씨에게는 태창목재를 설립해 운영하게끔 했다.

정태상 사장은 원래 경북 영주에서 1916년경부터 성창상점을 하던 분으로서 1948년경 합판산업에 뛰어들면서 아들 셋에게 각기 합판 회사를 차려 줄 정도로 합판사업운영에는 뛰어난 분이셨다. 후일 성창기업을 막내인 정해린씨에게 물려줄때까지…

성창기업 정태상회장, 아들 넷을 모두 합판회사 사장으로 만들다
1959년 설립된 선창산업의 정해수 회장(1928년생)은 수하에 봉화 사람을 많이 쓰는 분으로 유명하다. 변종우상무(작고)라든가, 김희준(작고)상무라든가, 권영서차장(퇴사)등이 모두 봉화사람이다.

정해수 회장은 사장시절부터 매일 하루에 한 시간씩 직접 중판보수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예 여공들이 중판 보수하는 중앙에 정회장님의 전용 중판보수상이 하나 있을 정도이다.

사장을 이채득 씨에게 맡기고도 고령인 지금까지 그일을 계속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직반장 이름은 거의 다 외우고 있을 정도로 현장을 중요시 하는 분이기도 하다.
정해수 회장께서는 CEO사장을 영입해서 회사를 운영하기를 오랫동안 해 오신 분이다.

초대 CEO사장으로 박승순사장(한일은행 상무출신,81년~82년 합판회사 구조조성 당시 합판협회 회장)을 영입해 근 10여년간 (75년부터85년까지) 회사를 운영했으며 그 후 이채득사장(조흥은행 출신, 전 대성목재 영업상무)을 영입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81년부터 합판수출이 부진하고 내수로 돌아서야만 하는 운명에 부딪친 합판업계는 드디어 82년 합판회사 구조조정 작업에 들어간다. 동명목재, 태창목재, 광명목재, 반도목재, 대명목재 등 커다란 합판회사들이 정리될 때, 박승순 사장은 선창산업을 구조조정 틈새에서 살려낸 공로자이기도 하다.

또한 선창산업은 열병합발전소의 선두주자이기도 하다.

大成木材 사원들은 선창산업에 열병합 발전소가 있어서 steam을 맘대로 쓰는 것을 항상 부러워 했다. drier에 steam을 충분히 줘서 당시 Kruin을(진이 많아 잘 마르지 않았음) 잘 건조시킬 뿐만 아니라, 사무실에도 steam을 충분히 줘서 난방도 따뜻하게 했던 것이다.
大成木材는 열병합발전소가 없어서 공장에 줄 steam을 관리하느라 사무실에는 steam을 적게 줘서 사무실이 항상 추웠다.

앞에 있는 선창산업은 steam이 남아서 밖에서 보일정도로 넘쳐났다.
당시 大成木材 사원들은 그 흔한 곤색점퍼 한번 입지 못하고 현장 사람들이 입는 회색 홑점퍼를 입고 근무를 했다.

80년, 81년 사우회장 모두 총무상무에게 사우회비로 곤색점퍼를 사겠으니, 사원들에게 곤색점퍼를 입게 해 달라고 건의했다.
당시 효성에서 나오신 총무상무 김상무는 그때마다 완강히 거절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고 현장과 위화감이 조성된다는 것이었다.
82년 필자가 사우회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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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들이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는 추워서 떨고 있었다. 사원들이 곤색점퍼를 입는 것은 사우회의 숙원사업이다 시피 돼 있었다. 그러나 금년에 또 얘기해 봤자 거절당할 것은 분명하다고 판단한 필자는 사우회 총무에게 지시해서 사원 수대로 곤색점퍼를 맞쳐올 것을 지시했다.

징계 내지는 사표수리를 염두에 둔 모험이었다.

곤색점퍼가 도착해서 각 부서로 배부됐고, 사원들이 점퍼를 입기 시작하자, 회색빛이던 사무실이 시커멓게 변해온다.

총무부서에도 시커멓게 변하고 있겠지 생각하니 진땀이 흐른다. 각오를 하고 일을 저질렀지만 걱정이 된다. 그날따라 날씨는 을씨년스럽게 추웠다.

1시간이 지났다. 총무상무께서 온통 사무실이 검게 된 것을 보셨겠지…, 총무상무께서 곧 전화를 하시겠지…, 나를 부르겠지…, 부르면 가서 무어라고 답변하나….
그러나 그날 아무 전화가 없었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아무말이 없었다.
총무상무께서 용서를 해주신 것이다. 사원들은 만세를 불렀다.
1978년 12월27일이라고 기억된다.

내년에는 원목가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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