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하우스 이영주 대표

어린 시절을 작은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인 1970년대는 한참 새마을 운동을 전 국민적인 운동으로 전개하고 있을 때라서 아침부터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하는 새마을 노래가 마을 맨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커다란 확성기에서 울려 퍼졌다.
어린 마음에는 그 노래가 활기찬 멜로디로 희망가처럼 들렸다. 어린 시절부터 아침 일찍부터 강제적으로 들려져 왔던 노래의 영향인지 그 시대에 자라온 세대는 이 나라 산업의 역군이 됐고 민주화의 주역이 됐다.
시골에서 자란 탓에 밥을 짓거나 겨울철 난방은 오로지 나무에 의지해야 했다. 불을 만드는 재료는 다양했다. 타는 재료는 모두 하나도 버리지 않고 아궁이로 들어가 추운 겨울을 나는 귀중한 재산이 됐다.
타작하고 남은 곡식의 줄기는 버리지 않고 아궁이로 들어가고, 방아를 찧고 남은 왕겨 또한 아궁이로 들어가 풀무를 돌려 밥을 지었다. 겨울철에는 지게를 지고 산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솔가지를 갈퀴로 긁어서 지게에 한가득 지고 서커스를 하듯 산에서 내려와 차곡차곡 나뭇간에 쌓았다. 산에서 나무를 하는 일은 그 당시에는 범죄였다.
산림녹화를 이유로 산에서 솔가지를 긁거나 잔가지를 자르는 일을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때는 경찰보다 더 무서운 것이 새마을 모자에 녹색 완장을 찬 산림 감시원이었다.
하지만 시골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연료가 나무인 까닭에 위험을 무릅쓰고 나무를 해야만 했다. 산림 감시원의 눈을 피해 아침 일찍 갚은 산속으로 들어가 온종일 나무를 하고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산림 감시원의 눈을 피해 모아놓은 나무를 가지고 내려오곤 했다.
식목일에는 작은 유목을 들고 마을 근처 나무가 없는 야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심었다. 작은 고사리손으로 나무를 심으면서 나무가 죽지 않고 잘 자라기를 기도하곤 했다. 그때 심은 나무는 나무가 아닌 꿈을 심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의 작은 경험은 평생의 자산으로 남는다. 좋은 경험은 인성의 바탕이 되고 자아 형성의 밑거름이 돼 건강한 인격체가 된다.
물론 당시의 새마을 운동이 비록 관주도가 돼 비판의 목소리도 일부는 있지만, 그 시대를 몸으로 겪은 세대가 얻은 것은 희망과 자신감 있었다.
이렇게 어려운 세대를 살아온 지금 우리 세대는 후세에게 무엇을 주고 있을까? 좋은 음식과 좋은 학습 환경, 그리고 스마트폰과 풍요를 주었지만, 과연 꿈과 희망을 주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볼 때이다. 어린 자녀에게 나무 심기 행사를 다시 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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