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_View병자호란 때 조선의 많은 아낙네들이 청나라 군사들에게 강제로 이끌려 전리품으로 끌려갔다 갖은 고생 끝에 고향에 돌아왔을 때 반겨주는 이 없는 자책감과 서러움에 목숨을 끊거나 지조 없다는 명목으로 죽음을 강요했던 역사가 있었다. 그 여인들에게 우리는 어떤 죄목을 선고할 수 있을까. 그리고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국가사회의 안위와 발전을 위임 받아 주요정책을 예측하고 준비하며 집행해 오면서 사회적 특권과 존경을 취했던 소위 리더그룹 - 당시 대부분 남자들로 구성된 군왕과 관료 등 - 들은 과연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 물론 위대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한편 이율배반과 위선의 시대가 우리 과거의 역사에 있었음을 차분하게 반성해볼 필요가 있으며, 특히 미래의 희망을 위해서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역사의 고비 고비마다 그럴듯한 명분을 표방하며 새로운 철학과 새로운 질서체제를 구축하였지만 긴 세월의 과거를 훑다보면 언제나 괴롭고 피해보는 것은 단순히 서민이라기보다는 넓은 의미에서 대다수의 피지배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지배자들 - 영향력을 크게 갖은 사람 혹은 집단 - 의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능력과 자기희생 그리고 리더쉽에 따라서 국가의 흥망성쇠와 전체구성원들의 삶에 있어 그 가치를 향유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은 과거시대와 오늘날의 세계를 보면 자명한 현실임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세상의 진리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가까운 곳에 있고, 진실은 현란한 마술보다는 객석에 있는지도 모른다. 복잡한 이론보다 삶의 기쁨은 단순한 앞마당에 머물고 순수한 마음은 앞산의 그리 높지 않은 중턱에 터를 잡는 것만도 즐거울지 모른다.

세상의 모든 일과 직책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 그 자체만도 분위기를 엄숙하게 만들지만 우리사회에서는 의외로 가볍게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재산과 가족 심지어 목숨까지도 담보로 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하는 일에 전력투구를 하여 소기의 성과를 만들어 내야하고 그들의 의사결정과 집행의 결과에 따라서 본인뿐만 아니라 관련된 종업원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주위의 관련업체에도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에 언제나 긴장을 안 할 수 없다. 언젠가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나라의 주요책임자들도 사업가들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담보로 정책을 개발하고 집행한다면 아이엠에프같은 외환위기는 발생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농담도 있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정책실패에 따른 책임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한 지인의 말에 의하면 일본의 CEO들은 변명을 싫어한다고 한다. 정직하게 시인을 하면 같은 일에 대하여 두 번 실수할 가능성이 없지만 변명을 하는 사람은 또 다시 잘못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고 부도난 회사의 사람들은 채용을 기피한다고 하는데 이유인즉 한 회사의 부실은 경영자뿐만 아니라 종업원들에게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의 지도자 그룹들의 현실분석과 미래에 대한 예지능력, 의사결정과 그에 따른 철저한 책임의식이 역사적으로 볼 때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 냈는지 다시 한번 겸허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의 경험에서만 배우는데 비해 현명한 사람은 타인의 경험에서 깨닫는다’는 비스마르크의 명언을 음미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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