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공사에서 익힌 항공써베이 기술을 인정받아 남방개발의 과장으로 스카웃된 최명행 씨는 남방개발에서도 항공써베이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 명실공히 항공써베이 기술의 제1인자로 부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자카르타에 출장을 갔을 때 우연히 인도네시아 정계의 실력가 ‘붕도모’라는 사람을 만났다. ‘붕도모’는 폰티아낙에 좋은 임지(林地)가 있는데 삼림개발권을 따낼 수 있으니 그 임지(林地)를 같이 개발해 보자고 제의했다. 최명행 씨로서는 원목개발을 자신이 직접 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이하였으나 본인은 투자할 자본이 없었다.

최명행 씨는 우선 폰티아낙 임지(林地)의 삼림 상태 및 경제성을 면밀히 점검한 후 한국에서 투자할 자본가를 찾기로 결심을 했다.

그리고는 그 길로 남방개발에 사표를 내고 한국으로 들어와 물주를 찾아 나섰다. 그것이 1974년의 일이었다. 이때 처음 물주로 나선 회사가 현대 신건재였다. 현대 신건재 윤순선 시장(대성목재 전무 출신)은 원목개발에 뜻이 있음을 밝히고 ‘아주임업’이라는 회사이름까지 지어주며 은행지급보증을 약속했다.

은행지급보증을 약속받은 최명행 씨는 우선 폰티아낙에 들어가 일할 멤버(발기인)를 구성했다. 발기인으로는 강수희 씨, 황정우 씨, 전계종 씨, 김병흠 씨가 참가했다. 서울 소공동에 사무실을 차리고 폰티아낙 개발사업 추진을 위한 사전준비작업을 한참 진행중일 때 지급보증을 약속했던 모기업 현대 신건재가 부도가 나는 사태를 맞이했다. 이것이 1975년의 일이었으니 아주임업의 폰티아낙 원목개발의 꿈은 하루아침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때 황정우 씨(경기고, 서울대 농대 임학과 출신)는 재빨리 반잘마신으로 나가 ‘자얀티자야’와 연락해서 이건산업(광명이 인수하기전)에 월 2척씩 원목을 공급하는 원목알선업자로 나섰다. 한 2년간 원목알선업을 한 황정우 씨는 돈을 많이 벌었고 반잘마신에 있는 제재소를 하나 인수하여 제재소 사장이 되기도 했다.

그때 홍콩의 김재강 씨(당시 대성목재 홍콩주재원)는 황정우 씨로부터 자얀티자야 원목을 받아서 부산 성창과 인천 선창에 원목을 공급하고 있었다. 한참 그 일이 잘 되자 김재강 씨는 대성목재 홍콩주재원을 그만두고 ‘호신’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강수희 씨를 영입했다. 강수희 씨를 반잘마신에 상주케 하면서 자얀티자야와 직접 네고하는 네고시에이터로 활약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 무렵 아주임업의 발기인중 막내인 김병흠 씨도 최명행 씨와 작별인사를 하고 홍콩의 김재강씨가 운영하는 ‘호신’에 합류하였다. 그 후 최명행 씨는 혼자 남아 이 일을 어쩌나 하고 고민하던 중에 뜻밖에도 홍콩의 김재강 씨(최명행 씨와는 고등학교 동기동창) 소개로 인천의 재벌회사인 신흥목재 회장 이훈돈 씨를 소개받게 된다. 이 때가 1978년의 일이다.

이때 신흥목재 이훈돈 회장은 부산에서 올라와 이건산업을 막 인수한 젊은 사업가 박영주 사장에게 넌지시 원목개발사업의 호불(好不)을 물어본 모양이었다. 그때 박영주 사장은 ‘회장님, 그사업 하지 마십시오’라고 충고를 드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미 반은 저질러 놓은 일이라 이 회장은 할 수 없이 원목개발 사업을 추진하였다는 소문이 전해내려오고 있다.

글; 김상혁 / shkim@witcons ulting.com
      한국목재컨설팅 상임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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