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은 정부당국이 특혜조치를 해주고 이익이 아무리 많이 나는 유망사업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고용증대와 수출증대에 관계없는 사업이라면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설봉이 1955년과 1956년 두해에 걸쳐 대성목재와 조선피혁 2개 공장을 인수하여 경영해 온 이래 거의 10년이 지나도록 다른 어떤 유망중공업이나 기간 산업에 손을 대지 않은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사실 보세가공업이란 이익보다는 손해를 보기도 하는 사업이었다.

그러나 설봉이 손해를 보기도 하는 보세가공업을 고집하여 굳이 붙들고 나갔던 것은 다만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해서였다.
천우사가 보세가공업을 시작한 이래 1년을 제외하고는 결손이 계속되었다.

설봉은 당장이라도 보세가공업을 중지하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으나 공장에 가 보면 하루 100원 내외의 수입도 큰 돈벌이라고 매달려 애쓰고 있는 공원(工員)들을 보면 차마 그만둘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사업으로 수익을 올려 회사를 유지하고 보세가공업은 사회사업을 하는 셈치고 봉사정신으로 이끌어 갈 생각을 하였다.

비록 보세가공회사는 손해를 보더라도 국가와 민족에 끼치는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설봉은 1965년을 기점으로 기존 사업의 일대 확장을 단행했다. 즉 대성목재 기존 합판공장의 증축을 비롯하여 새 기계의 도입, 칩보드공장 확장공사, PF 공장 신설, 포르말린공장 신설, 용현합판공장 신설 등을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혀 새로운 사업으로서 삼익선박을 인수하였다.

삼익선박을 시작하게 된 주된 동기는 대성목재의 원목수송을 원활히 하고 운임을 절약하기 위해서 였다.

남들은 선박회사 하나만으로도 수지를 맞추는데 대성목재는 그 많은 수입물량을 가지고서 어찌하여 수지를 못 맞추겠는가 이러한 생각으로 선박회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회사설립허가를 새로 받아가지고 할 생각이었다.그러나 막상 일을 착수하고 보니 수속이 여간 까다롭지가 않았다. 그래서 여러가지 고민을 하고 있을 적에 이미 삼익선박이라는 이름의 선박회사를 경영하고 있던 김창준 씨를 만나게 되었다.

설봉과 김창준 씨는 전 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그는 외국차관을 얻어가지고 선박 2척을 건조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차관 지불 기일때문에 4년여동안 국내에 한번도 입항을 못한채 홍콩, 필리핀, 싱가포르 등지만을 왕래하며 한국을 피해 다니면서 운항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형편을 안 설봉은 이 문제를 정부당국에 교섭하여 해결해 주면서 그와 동업관계를 맺고 그 회사를 방계회사로 만들었다.그리하여 대성목재는 필리핀, 말레이지아에서 생산되는 원목을 자기 배에 싣고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글/ 김상혁  shkim@woodconsult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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