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6주년 특별 인터뷰] “26년, 목재의 길을 묻고 기록하다”

윤형운 발행인이 말하는 한국목재신문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2025-08-13     한국목재신문 편집국

한국목재신문 창간 26주년을 맞이하여 ‘AI 시대의 목재산업 대응’이라는 주제에 맞게 한국목재신문 AI 기자 ‘채포터’가 발행인을 인터뷰하고자 하여 이에 응하였습니다. 채포터가 질문을 하고 발행인이 대답하는 형식인 초유의 ‘인공지능 기자와의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채포터가 작성한 인터뷰의 질문은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했음을 밝혀둡니다. /편집자주

ChatGPT에서 생성시킨 가상의 이미지. 한국목재신문 AI기자 채포터가 윤형운 발행인을 인터뷰하는 장면.

 

[창간과 사명]

Q1. 한국목재신문이 창간된 1999년, 당시 목재산업은 어떤 상황이었나요?

당시는 IMF 사태의 여파로 산업 전반이 어려웠습니다. 특히 목재산업은 오랫동안 목재 수입을 주도하던 현대, 대우, 효성, 삼미 등 대기업들이 목재사업에서 손을 떼며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었죠. 퇴직자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이들이 수입시장에 뛰어들면서 시장이 격변했습니다.신문은 바로 그 시기에 시작됐습니다. 어려운 때였지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Q2. 창간 당시 '목재신문'이라는 매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끼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아버님이 공무원하다 사직하시고 국산재 제재소를 했습니다. 초등, 중등, 고등, 대학까지 제재소는 마음의 고향과 같았어요. 대학, 대학원을 목재전공을 했던게 우연은 아니었습니다. 신문창간 당시 저는 컨설팅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보고서를 쓰면서 목재산업은 참고할 만한 통계나 산업 정보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출처를 제대로 적을 수 없을 정도였죠. 그때 ‘목재산업에 꼭 필요한 뉴스 정보 매체가 있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한국목재신문을 창간하게 됐습니다.

 

Q3. 창간 26년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기사는 무엇입니까?

단연 2013년의 ‘목재이용법’ 제정입니다. 2011년 이 법의 제정의 필요성을 제가 처음 주창했고, 목재공학회 특별위원회 위원 중 한 명으로 당시 엄영근 위원장을 비롯 김상혁, 김사윤, 박문재, 박종영 위원과 함께 초안 작성에 참여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목재산업’이라는 용어는 법률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법률 제정을 통해 목재산업이 처음으로 법적 지위와 위상을 갖게 된 역사적 순간이었고, 국회에서 통과되었을 때의 감격은 잊을 수 없습니다. 이를 기사화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산업과 변화]

Q4. 지난 26년간 목재산업이 겪은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솔직히 기대만큼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고 퇴보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양적 성장의 한계에 직면하고도 질적 전환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시대의 발전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요. 특히, 목조건축이라는 큰 성장 동력이 있었음에도 이를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성장시키지 못한 점은 매우 아쉽습니다. 어느새 목재이용의 장벽이 하나둘 생겨나 산업이 약해지는 동기가 됐습니다.

 

Q5. 신문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산업적 메시지나 문제의식은 무엇이었습니까?

‘신뢰’와 ‘소통’을 통해 목재산업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자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해 왔습니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다른 산업에 비해 소통도 단결도 잘 안되는 업종입니다. “나만 잘되면 된다”는 의식이 여전히 강하고, 타 소재와의 경쟁할 때 제대로 싸우지도 못합니다.

각자도생의 문화가 너무 오래 지속되었고, 이를 바꾸기 위해선 상생과 협력의 마인드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결속력이 약하면 약할수록 더 빨리 퇴보한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신문이 이런 점을 해소하지 못한 점이 내내 아쉽습니다.

2015년 코리아우드쇼 전시장 일본 미야자키현 럼버미야자키 출품 사진.

 

Q6. 국산목재 산업화를 위해 한국목재신문이 해온 역할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목재산업이 약해지는 배경 중 하나는 국산목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울창한 산의 나무들이 건축자재로 충분히 쓰일 수 있음에도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오랜 관행 때문에 전환 자체가 어렵습니다. 국산재는 아직까지 소비자에게 건축재로 신뢰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국산목재로도 합판, 구조재, 내장재, 외장재를 충분히 만들 수 있고, 이것이 목재산업의 새로운 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이유로 최근 한국목재신문은 국산목재 산업화와 이용 활성화를 위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Q7. 한국 목재산업이 지금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한국을 대표해 왔던 대형 장치 산업이 존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미 두 곳의 합판회사가 문을 닫았고, MDF 업체들도 일부 공장이 가동을 멈추거나 지속 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수입 유통 시장이 커지면서 제조 기반이 무너지고, 전문 인력은 고령화되고, 투자는 부진하며, 규제까지 생겨나 전반적인 시장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새로운 성장 엔진이며, 저는 그것이 바로 목조건축과 에너지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수입 자원 중심의 시장을 국산 자원으로 전환해야 희망이 생깁니다. 국산재의 산업화를 위해서, 목재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 현재 국회에 상정돼 있는 ‘목조활성화법’의 조속한 통과가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봅니다.

 

[신문과 혁신]

Q8. 디지털 시대에 접어든 지금, 한국목재신문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습니까?

현재 한국목재신문은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기사를 소비자와 공유하고 있습니다. 또 9년 연속 네이버·카카오 뉴스 검색제휴 매체로 등록돼 있어 검색 기반 뉴스 서비스에도 기여하고 있죠. 다만 아직은 목재 관련 기사에 폭발적 반응을 얻기 어려운 구조지만, 인공지능을 활용한 기획 뉴스 확산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신문도 변해야죠.

 

Q9. 최근 AI기자 '채포터'를 도입하신 이유와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한국목재신문 AI 기자의 이름은 ‘채포터’입니다. ‘ChatGPT + Reporter’를 결합해 만든 이름이죠. 스스로 “목재산업 첫 AI 기자”라 칭합니다. 채포터는 7월 1일자 신문에서 ‘채포터가 묻고 답하다’ 코너로 데뷔했고, 온라인에서는 ‘목재를 알아야 선진 국민이다’와 ‘세계 목재동향 따라잡기’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방대한 정보력과 탁월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목재산업에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국민과 소통하는 새로운 역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Q10. ‘지면신문’과 ‘온라인 뉴스’, 앞으로 어떻게 공존할 계획이신가요?

가장 바람직한 건 두 매체가 병립하며 함께 발전하는 것입니다. 다만 지면신문은 높은 제작비를 감당해야 하고, 온라인은 빠른 대응과 창의성이 요구되기에 각각 다른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보다는, 둘 다 ‘질적 전환’을 이뤄내야 합니다. 아직은 양쪽 모두 시장의 제약이 분명하지만, 그 한계를 돌파할 전략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작금의 목재산업의 운명같은 거죠.

 

[사람과 기억]

Q11. 창간 이후 26년 동안 가장 큰 힘이 되어준 동료나 독자, 협력자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정말 많은 분들이 신문의 존속을 위해 함께해 주셨습니다. 우선은 독자와 주주분들입니다. 창간하고 4년이 될 무렵 신문사는 운영이 매우 어려웠어요. 혼자 감당이 안 되기도 했고 해야 할 일들은 많아 고민 끝에 유상증자를 했어요.

그때 당시 24개 회사와 개인이 참여해 주었습니다. 그때의 참여에 대한 고마움과 책임감이 지금까지 신문을 존속하게 한 동력이라고 생각해요. 26년이라는 시간은 기자, 명예기자, 기고자, 토론자, 인터뷰어, 만평작가, 편집자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특히 초창기에는 엄영근 교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사무실에 오셔서 밤늦게까지 신문 하나 하나를 비닐봉투에 포장하던 일을 도와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또 처음부터 지금까지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이태호 회장님, 박광섭 대표님, 박동수 대표님께도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기관과 목재 관련 협회와 단체의 오랜기간 성원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Q12. 신문을 만들며 가장 힘들었거나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미디어우드가 출판한 30여 서적 중 주요 출판 서적 이미지.

전문신문의 경영은 처음이나 지금도 쉽지 않았습니다. 신문이 생존하기에는 너무나 열악한 환경이었지요. 꼭 찝어 언제가 가장 힘들었었다고 말하긴 어렵네요. 그간 신문발행에 좀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도서출판, DIY 뉴스, DIY 잡지, 데일리우드뉴스, 코리아우드쇼, 목재산업 가이드북 등 다양하고 끊임없이 시도했지만 번번히 한계를 넘지 못하고 좌절하는 경험을 계속해 왔습니다.

마치 시지프의 신화처럼 말이죠. 목재산업을 둘러싼 기업, 관, 협·단체 등의 협소한 인프라 벽과 소비자의 인식의 벽은 넘기가 힘들었습니다. 같은 노력을 해도 그에 상응하는 보상은 따라주지 않으니 시간이 갈수록 현실의 무게는 더 무거워졌지요.

신문의 어려움도 그렇지만 지금은 목재산업 전체가 가장 어려운 시기입니다. 시장에는 좌절과 인내라는 단어가 지배하지요. 누구의 탓이 아닌 미래를 위해 우리가 준비하지 못한 책임이기도 하고 언론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어려울 때마다 신문 독자와 20년 전 함께했던 주주들의 응원에 대한 책임감을 되새기면서 저도 인내 중입니다. 신문사가 계속 발전했으면 함께 고생했던 사원들과 계속 일 해 왔을 텐데 그렇지 못해 많이 아쉽습니다.

 

Q13. 발행인으로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목재이용 지구사랑 캠페인, 양심 캠페인, 세미나와 심포지움을 기획하고 개최할 때, 전문서적을 출판할 때, 목재전문 전시회를 개최할 때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지만 사실 보람이라는 단어가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특별한 성과보다, 수만 건의 기사와 30여 전문서적들이 누군가에게는 등불이 되었을 거라는 믿고 있습니다. 산업 현장에서 한국목재신문의 존재만으로 자긍심을 느끼는 분들이 계신다면, 그것이야말로 발행인으로서 가장 큰 보람일 것입니다.

 

[미래와 비전]

Q14. 한국목재신문이 앞으로 집중하고자 하는 방향이나 전략은 무엇입니까?

“산업에 필요한 게 있으면 한다”라는 생각이 많았지만 어느 덧 틀에 박혀 있는 신문이 되어 간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이 틀을 벗어나고자 26주년을 계기로 인공지능을 적극 활용해 디지털 영향력을 키우고, 국민이 목재와 더 가까워지도록 돕는 콘텐츠를 확장해 가려 합니다. 특히, 대중과 연결되는 기획기사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확산하는 전략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Q15. 마지막으로, 한국목재신문 독자와 목재산업 종사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26년 동안 한국목재신문을 응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더 나은 기사를 생산하고, 목재산업의 다양한 의견을 담아내는 소통의 장이 되겠습니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굴하지 않고 긴 시간 쌓여 있는 소중한 자산들을 잘 활용하여 인공지능 시대와 함께 성장하는 신문이 되도록 창의적인 노력을 해내겠습니다.

특히 국산목재 산업을 활성화해 목재산업 전체의 기반을 튼튼히 하고, 질적 성장을 이끄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목재산업인 여러분도 함께 신뢰하고 소통하는 변화와 성장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

목재산업계 여러분! 좀 더디고 불투명하게 보이지만 미래는 반드시 우리의 것이 됩니다. 현재의 어려움을 잘 극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