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산불피해목, 복구가 아니라 자원으로 봐야 한다
올해 봄 영남권을 중심으로 발생한 대형 산불의 피해 면적은 10.4만 헥타르에 달한다. 이는 서울의 1.7배에 해당하는 규모로, 우리 산림 역사상 전례 없는 피해다. 불에 탄 나무들은 수피만 그을리고 내부는 멀쩡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현행 복구계획은 ‘위험목 제거’에 머물러 있다. 문제는 이 ‘제거’의 의미가 대부분 벌채 후 방치 또는 파쇄라는 점이다. 그 렇게 사라지는 피해목이 1,000만㎥ 이상, 원목 가치로만 1조 원 규모에 이른다. 그 나무들은 단순한 복구 대상이 아니라 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 국가 자원이다. 최대한 탄소저장을 할 수 있는 이용계획을 세우고, 과감한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산불피해목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1년 이내에 벌채해서 제재·건조해야만 구조재나 내장재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피해목을 산에서 임시로 내려둘 집하장(集荷 場)이 턱없이 부족하다. 집하장이 없으면 벌채한 나무를 산에서 꺼낼 수가 없다. 결국 피해목은 산속에 오래 방치된다. 벌목업자는 운반비 손해로 수집을 포기하고, 가공공장에는 원자 재가 도착하지 않는다. 그 결과 피해목은 구조재나 집성재로 전환되지 못한 채 칩으로 파쇄 되어 일부는 보드원료로, 대부분은 에너지용 연료로 쓰인다. 탄소를 저장해야 할 자원이 오 히려 연소되어 다시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산불은 불행이지만, 피해목은 목재산업에는 국산 원자재 확보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침 엽수 중심의 피해목은 제재·건조를 거치면 구조재, 글루램(Glulam), 구조용 집성판(CLT) 등 건축용 공학목재로 가공이 가능하다. 이 자원이 제대로 활용된다면 최소 2~3조원의 부가가 치와 약 900만 톤의 이산화탄소 저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복구와 예방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번 국회를 통과한 ‘산불피해지역 복구 및 지원에 관한 특별 법’에서도 피해목의 활용이나 유통체계는 사실상 빠져 있다. 산림청이 산불피해목의 활용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으니 탄소중립은 말뿐인 구호가 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의 실수가 아니라 국가적 손실이다.
피해목 활용을 복구사업의 부속 항목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 탄소중립 시대의 새로운 산림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피해목의 수집과 집하, 제재·건조, 건축자재화까지 연결하는 일은 단순한 재해복구가 아니라 탄소감축·산업 육성·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이루는 전략사업이다. 이를 위해 국가는 피해지역 내 임시 제재 및 건조시설을 설치하고, 공공수매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또한 전국 단위의 공공 집하장을 확충해 목재가 산에서 가공공장까지 원활히 이동할 수 있는 공급망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지금처럼 피해목을 파쇄하거나 태우는 방식은 탄소중립 정책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산불은 이미 일어난 자연재해지만, 피해목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피해목을 자원으로 전환하면 산불은 새로운 산업의 출발점이 되지만, 버린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국가적 낭비다.
산불피해목은 재난의 잔재가 아니라, 산림순환경제의 기회다. 이를 자원으로 살리지 못하면 숲의 상처는 결코 치유되지 않는다. 진정한 복구는 숲을 다시 심는 것이 아니라, 숲이 남긴 나무를 다시 쓰는 것에서 시작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복구가 아니라 결단과 투자다.
산림청은 산불피해목의 건축자원화를 통한 탄소저장 정책을 수립하고, 과감한 예산 확보로 이를 실현해야 한다. 제재와 건조 설비를 확충하고 첨단화해 경제성과 품질을 함께 확보한다면, 이번 위기는 국산목재 산업기반을 강화할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