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전정원박람회 수놓은 브라운빛 대나무, 한국산 친환경 소재의 새 상징”
㈜에이치티, 대전정원박람회에 친환경 대나무 정원 조성
국산 대나무가 고열처리 대량생산 체계를 본격적으로 갖추며 건축·조경 분야의 새로운 친환경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그간 활용도가 낮았던 국산 맹종죽(죽순대)이 고온·증기 기반의 친환경 고열처리 기술을 통해 내구성을 확보하며 고부가가치 자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에 위치한 국산목재 고열처리 전문기업 ㈜에이치티는 연간 500톤 이상 생산이 가능한 대나무 전용 고열처리 라인을 본격 가동하며 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 설비를 통해 길이 약 4m의 원통형 대나무는 갈라짐 없이 함수율 5% 수준의 갈색 대나무로 가공되며, 이 과정에서 대나무 고유의 전분이 변성되어 흰개미와 곰팡이에 대한 생물학적 안정성도 크게 향상된다. 울타리, 파고라, 벤치, 가림막 등 다양한 제품은 2024년 9월 27일 준공된 ㈜에이치티 세종 제2공장에서 제작된다.
이번 고열처리 대나무 제품의 대량생산은 산림청 R&D 과제인 ‘고열처리 맹종죽재 및 부산물의 고부가가치화 기술 개발(2023~2025)’의 지원을 받아 추진됐다. 한편,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대전 한밭수목원에서 열린 제1회 대전정원박람회에서는 고열처리 맹종죽 제품과 국산 낙엽송 데크로 꾸며진 정원이 설치돼 관람객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 “대나무 산업의 성장 가능성”…네 가지 핵심 요소
첫째, 자원 활용도가 탁월하다. 대나무는 1년 만에 수확이 가능하며, 3~5년 주기로 지속적인 벌채가 가능해 목재 대비 훨씬 빠른 재생 사이클을 자랑한다.
둘째, 탄소 흡수력도 뛰어나다. 일반 수종보다 35% 이상 높은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을 가지고 있어 기후위기 대응에 효과적인 자원으로 평가된다.
셋째, 활용 분야가 매우 다양하다. 대나무는 식기류, 섬유제품, 건축자재는 물론, 화장품 원료와 바이오 연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서 사용될 수 있다.
넷째, 무엇보다 경제성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초기 투자에 비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확장 가능성이 크다.
Spherical Insights & Consulting에서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대나무 시장 규모는 2023년 654억 1천만 달러에서 2033년 1,041억 9천만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2023-2033년 예측 기간 동안 4.77%의 CAGR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 “단단하고 오래가는 대나무”…새로운 건축시장 개척
고열처리를 거친 대나무는 기존 생대나무의 치명적인 단점이었던 곰팡이·해충 피해, 수축팽창에 의한 뒤틀림 현상이 현저히 줄어든다.
열처리를 통해 색상은 진한 브라운톤으로 변하고, 조직은 더욱 치밀해지면서 외관적 품질 또한 향상된다. 이에 따라 울타리, 내·외장패널, 가구소재, 천장 마감재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이 가능하다. 특히, 탄소배출 감축 효과와 함께 국내 산림자원 활용률 제고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국내 친환경 건축자재 시장에서 ‘고열처리 대나무’는 차세대 친환경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에이치티 기술연구소 관계자는 “수입산 목재를 일부 대체할 수 있는 국산 재료로서 충분한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향후 간벌 목재 울타리(GR F 2018) 성능 등 까다로운 기준도 충족시킬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갖췄다”고 밝혔다.
◇ “국내 자원 활용률 제고”…산촌경제 활성화 기대
국내 대나무 자원은 전라남도 담양, 경상남도 하동, 거제, 제주도 등지에 집중되어 있으나, 활용도는 아직 낮은 수준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국내 대나무 발생량은 연간 약 3만 톤 이상이지만, 대부분 저가 지지봉, 생활용품 원료 등으로 소비되거나 산림 내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고열처리 대나무 생산라인은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고, 대나무의 고부가가치 활용 사례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가공 공정에 많은 인력과 기술이 요구되지 않기 때문에, 산촌 지역 소규모 협동조합, 영림단, 귀산촌 창업자 등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 “수출 경쟁력 확보”…글로벌 친환경 건축시장 공략
최근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선진국 중심으로 제품이나 서비스의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영향 정보를 정량적으로 공개하는 제도인 ‘환경성 선언(Environmental Product Declaration, EPD)’ 인증 자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고열처리 대나무는 국제 경쟁력을 갖춘 수출 유망 품목으로 부상하고 있다.
탄소저감형 소재이자 생분해 가능 자원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 네덜란드, 일본 등에서는 이미 열처리 대나무를 고급 외장재로 사용 중이며, 국내산 대나무로 제작된 열처리 제품 역시 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술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에이치티는 금년 중 ISO 22157 등 국제표준에 따른 내구성 시험을 완료하고, 국내 대형 건설사와의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실증단지 시공 사례를 확보할 예정이다.
한편, 중국 국가임업초원국(国家林业和草原局, National Forestry and Grassland Administration)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지속가능한 대체재로서의 대나무 활용을 촉진하는 ‘대나무 이니셔티브(Bamboo as a Substitute for Plastic Initiative, BASP)’를 통해 2030년까지 대나무 산업을 1조 위안(약 190조 원) 규모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 “고기능 제품으로 진화”…복합화, 접착 및 성형 가공 기술
고열처리 대나무는 표면 탄화 특성을 활용해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나 향후 다양한 기능을 추가한 복합소재로 진화할 수 있다. 현재는 치수 안정성, 내구성, 방부성, 곰팡이 저항성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나, 복합소재화 기술, 접착 및 성형 가공 기술 적용 등으로 고기능 건축 내·외장재로의 전환이 가능하다.
또한, 최근 고급 인테리어 시장에서 선호하는 ‘자연결 무늬’를 그대로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친환경 고급 디자인 수요에도 대응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조경시설재, 건축·인테리어 자재(데크재, 사이딩/외장재, 실내 마루재, 루버 및 천장재, 죽롱등), 가구 및 생활용품(고급 실내 가구, 주방용품, 욕실용품), 산업용 소재(합판·보드 코어재, 프리패브 패널 소재, 복합재료) 등 무기질 또는 합성수지 기반 자재를 대체하는 소재로 입지를 강화할 전망이다.
◇ “국내 최초 죽재산업단지 조성”…정책적 지원과 제도 정비도 병행돼야
전문가들은 고열처리 대나무의 산업화를 위해 기술력뿐 아니라 제도적 기반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대나무는 법적으로 ‘목재’로 인정되지 않아 일부 인증 및 조달제도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응해 대나무를 포함한 비전통 목질자재에 대한 기술표준을 제정돼야 하며, ‘국산재 확인제도’ 적용을 위한 기준 정비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
'고열처리 맹종죽재 및 부산물의 고부가가치화 기술 개발(2023~2025)' 산림청 R&D 과제를 수행 중인 ㈜에이치티 김경중 대표는 “국산 대나무 자원은 지역산업의 재료일 뿐 아니라 탄소저감형 자재로서 국가 차원의 전략 자산으로 볼 필요가 있다. 지역 중심의 소규모 지원에서 벗어나, 건축·조경·자동차·플라스틱 대체 산업과 연계된 중장기 로드맵이 마련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산업화 수준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국산 대나무는 품질이 뛰어나고, 친환경 가치가 높다.
지금부터라도 체계적으로 전략을 수립한다면 충분히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 차원의 죽재산업단지 조성 지원, 관련 법령 개정, 국가 규격 제정 및 인증 시스템 구축이 뒷받침된다면, 한국도 아시아 녹색 전환의 중심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