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목을 기계에 올리고 작동할 때 강하게 오는 떨림. 칼의 각도와 모양에 맞춰 변해가는 목재의 굴곡진 외관은 만드는 이도 보는 이도 매료시킨다. 목공예의 마지막이라 평가되는 목선반은 작품으로써 목재의 새로운 모습을 보이며 가치가 더 높아지고 있다. 목선반에 미쳐 평생을 목선반과 함께할 것이라 말하는 노희완 목공예와 만났다.

떨림의 미학
단순히 목선반 기계를 이용해 제작한 목공예품이라 하면 ‘우든펜’이나 ‘술잔’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단순한 제품에서 이제는 하나의 작품으로 목선반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10년간 목선반을 해온 노희완 공예가는 ‘목선반에 미쳤다’라는 수식어를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노희완 공예가가 걸어온 이력은 상당히 화려하다. 인테리어 설계, 목조주택 시공, 인·익스테리어 목수 등 목재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목재와 공구 두가지를 손에 놓지 않고 세월을 따라 흘러온 결과다.
노희완 공예가가 목선반을 만들게 된 이유는 ‘가구 다리’ 덕분이다. 당시 목선반은 전문적인 기술로 취급되기 보다는 부자재를 제작하는 단계과정의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노희완 공예가는 완제품 가구에서 얻지 못한 제작의 기쁨을 목선반 작업을 통해 얻게 됐고 ‘이 것이다’싶어 모든 것을 제쳐두고 목선반에 빠져버렸다.
노희완 공예가가 목선반에 빠진 이유는 단 한 가지 ‘떨림에서 오는 아름다움’이다. 목선반에 통목을 끼고 원하는 방향으로 이리저리 돌리며 나무를 깎아낼 때 함께 오는 진동은 앞으로의 변신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특히 각자가 도구를 잡는 방향, 나무를 돌리는 모양새, 제각각 다르게 날이 서 있는 도구 등에 따라 서로 다른 작품을 창조해낸다. 처음에 ‘이런 모양을 만들어야지’하고 생각해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목선반의 매력이다.
노희완 공예가는 이러한 목선반의 매력을 일찍이 깨닫고 국내 척박한 목선반 시장에 작품으로써 드러내고자 계속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목선반 더 빨리했더라면
10년의 세월 동안 접해온 목선반, “매일 매일 해왔으니 할만하지 않나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노희완 공예가는 “해가 갈수록 목선반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라는 답변을 냈다. 그 이유는 “처음 배울 때만 해도 하루, 이틀이면 목선반을 이용해 소품 하나쯤은 뚝딱 만들었는데 지금은 완성도를 높이고자 하는 개인적인 욕심에 일주일이 걸릴 때도 있다”라는 것이다.
욕심을 조금 버리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기자의 머리에 스치기도 전에 노희완 공예가는 “목선반을 단순히 소품이 아니라 작품으로써 제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선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 욕심은 필요하고, 내가 인정하지 못하는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은 더 어렵다”라고 전했다.
더 나아가 노희완 공예가는 “제가 좀 더 목선반을 더 빨리했더라면, 그 이전에 빌더, 목수생활 등을 하지 않고 바로 목선반과 마주했더라면 기쁜 삶을 살고 목선반에 대한 연구 및 노력을 더 투자했을 것 같아요”라며 목선반에 대한 애정을 더욱 드러냈다.
노희완 공예가가 목선반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 국내에는 번듯한 교육기관도 없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목선반은 스쳐 지나가는 작업일 뿐이니 말이다. 지금도 목선반 기계에 대한 이해도는 우든펜, 팽이 등을 제작하는 수준으로 이해되는 수준이다.
이렇게 척박한 국내 환경에서 목선반을 전문적으로 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노희완 공예가는 과거 힘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선반을 자신의 삶에서 더욱 빨리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목선반에 애정을 갖기까지
기자는 목선반에 대한 애정을 듬뿍 드러내는 노희완 공예가를 향해 목선반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 지에 대해 질문했다. 그러자 노희완 공예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생계를 포기하고 목선반에 미치면 된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노희완 공예가는 목선반을 위해 지난 10년의 세월동안 생계를 포기한 채 일에 몰두했다. 처음엔 알려지지 않은 분야이고 외국에서도 독창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목선반에 대한 자료를 얻기는 너무 힘들었다. 특히 가구제작의 경우 도면만 있다면, 같은 모양의 제품을 여러 번 생산할 수 있어 해외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참고해 도움을 얻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목선반의 경우 기계의 위치나 손방향 등에 따라 각 공예가들마다 스타일이 달라 똑같은 모양의 제품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저 해외 공예가들의 작품은 참고용이지 그것을 따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에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완벽한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희완 공예가는 오랫동안 꾸준히 노력했다. 물론 슬럼프도 왔다. 어느 한 부분이 잘 풀리지 않아 완성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개월 동안 목선반을 손에서 놓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다.
자세하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노희완 공예가의 작품성이 가족의 인정을 받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물론 현재는 자랑스런 남편이나 아빠로 목선반 분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며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노희완 공예가는 “어니언우드 운영을 오랫동안 해왔지만, 교육 문의는 몇 개월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정도 였다. 하지만, 최근 몇 년새 목선반에 대한 끊임없는 문의가 오고 있으며 교육생도 계속해서 증가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전했다.
어니언우드 건물은 1층이 목공방 2층이 본인 집으로 구성돼 있는데, 어느 달은 교육에 바빠 건물 밖으로 마실 나올 새도 없었다고 한다. 이는 모든 생활 반경에 목선반을 중점으로 두며 미쳐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희완 공예가는 아직 자신이 만든 작품을 가지고 개인 전시회 등을 가져본 적이 없다. 아직 자신의 작품에 대한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국내 목선반의 활력을 위해 교재 제작과 전시 등을 조금씩 준비해 나갈 예정이다. 그릇과 우든펜 등에 한정되지 않는 작품으로써의 목선반이 노희완 공예가의 손끝에서 나올 그 날을 기대한다.

공방명:어니언우드
대표자:노희완
품  목:목선반을 이용한 작품
창립일:2006.03.05
주  소:경기도 평택시 서정동
블로그:blog.naver.com/hw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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