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닮고픈 ‘소나무화가’ 한국화가 홍소안 소나무가 좋아 소나무를 그리게 된지 벌써 5년이 훌쩍 지났다.소나무를 그리기 위해 소나무가 좋은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 않고 다니길 몇 년. 홍소안은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주저없이 소나무를 꼽는다. 소나무 숲처럼 싱그러운 그의 전시회를 찾았다. 한국의 선비상 한국화가 홍소안은 벌써 10번째 개인전을 여는 중견작가다. 그는 몇 년째 소나무 그리기에 여념이 없다.씩씩하고 굳은 절개, 힘들어도 늘 푸르름을 유지하는 소나무는 마치 우리네 선비상을 닮아 있다.가장 좋아하는 나무가 소나무라는 그는 선비처럼 곧은 소나무를 그리기로 마음먹었다.94년부터 시작된 그의 소나무 그리기는 96년이 되면서 본격화됐다.6년간 소나무를 찾아 전국을 찾아 다닌 결과 그 험난한 여정의
다듬어지지 않은 거침에 대하여 침목조각가 정현 다듬어지지 않은 거침. 그 무한한 에너지에 이끌렸지만 감히 손 대지 못하고 안타깝게 지켜보기만 해 온 재료. 비바람과 세월의 깊이를 견뎌온 철도침목이 조각가 정현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다. 15년만에 손 댄 재료 조각가 정현에게 침목의 의미는 남다르다. 그의 작품은 늘 다른 재료지만 늘 같은 주제로 형상화된다. 인체라는 주제는 그가 20년동안 고수해 온 작업이다.그는 이번에 흙이나 돌이 아닌 특별한 소재인 침목을 15년만에 감히 건드렸다. 그것도 아주 과감하게…….이전까지 침목을 소재로 사용해온 조각가들이 있었지만 그의 침목은 남다르다. 다른 이들이 침목의 원형을 전시·보존하고자 했다면 그는 침목을 자르고 쪼개서 침목의 겉이 아닌 그 내면의 세계를 보
태극기 버금가는 한국 알림이 ‘태극선’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선자장 보유자 조충익 대나무와 한지의 조화, 가장 실용적인 예술품이자 한국의 전통을 알리는 도구로 사용되는 부채.예로부터 전주는 한지가 유명했고 남원, 나주 등지에서 제작된 부채가 모이는 장소였다. 전주에 부채의 명장이 많은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데 부채는 합죽선과 단선이 있다. 이중 단선 가운데서도 태극선의 달인이라는 조충익 선자장의 작업실을 찾았다. 상품에서 예술작품으로 늦더위가 채 가시기도 전인 9월의 한낮, 선자장 조충익이 운영하는 전주민속공예사는 더위에도 쉴 틈이 없다.지금 서울에서는 그의 전시회가 한창이건만 정작 주인공은 서울을 등지고 새벽같이 전주로 내려와 부채를 만들고 있다.그가 처음 부채를 만들기 시작할 때는 생계 그
나무, 하늘과 땅 이어주는 매개체목판화가 남궁산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속에나무 한 그루 키우며 살지요 웃음 함박 꽃 피는 살구나무바람과 더불어 사는 버드나무하늘 높은 줄 모르는 미루나무주렁주렁 빨랑 감나무그대의 나무는 밑동 채 잘려나간 그러터기,세상의 톱날을 피할 수가 없었다구요오늘 그대의 몰래 울던 눈물에가지 돋고 새싹이 피어납니다 그대 마음의 그루터기 ‘오행 중 木이 모자라는 사람’ 생명을 중시하는 판화작가 남궁산은 서양화를 전공하다가 목판화로 진로를 바꾼 뒤 80년대말부터 목판화의 매력에 흠뻑 취해 있다.우스갯소리로 나무에 나무와 새를 새기는 이유를 “아마 난 오행 중 木이 모자란 모양입니다. 나무에 나무를 새기고 있는 걸 보면 말이죠”라고 대꾸한다.어린시절부터 그랬다. 그림을 그리
천연 방수·방충·방부 도료 ‘옻’ 서울시 무형문화재 생옻칠장 보유자 신중현 6·25전쟁때 피난을 가서 배우게 된 옻칠이 반세기 동안 업이 되어버린 사람.옻칠의 재주를 인정받아 서울시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되기도 하고 이승만 초대대통령이 미국 장군에게 선사한 탁자도 그의 손을 거쳐갔다.팔다리가 온통 옻에 오른 자국이어도 남은 평생동안 일을 계속하겠다는 신중현 생옻칠장을 만났다. 생옻칠장으로 다시 태어난 하우스보이 6·25전쟁 당시 미군부대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하우스보이였던 어린 청년은 1·4후퇴때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됐다.이 피난길이 지금의 생옻칠장이라는 칭호를 안겨주게 됐다는데…. 부산에 피난을 가서 누나와 함께 살게 됐는데 매형이 옻칠로 유명한 홍순태씨였다. 자연스레 어깨너머로 배우게 된 옻칠은
나무를 꿰뚫어보는 목수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소목장 보유자 방대근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목수가 된지 벌써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스승이 무서워 서울로 도망을 치기도 했지만 목수가 되겠다는 일념은 한번도 변치 않았다는 그. 결국 엄하고 정 많은 스승이 서울로 찾아와 도피행각은 수포로 돌아갔다는데……. 나무를 꿰뚫어 보는 사람만이 목수가 될 수 있다는 소목장 방대근의 나무와 함께 하는 삶을 엿보자. 아버지가 열어준 소목장 인생 9남매 중 차남이 있었다. 만드는 것을 좋아해 연을 날리기 위한 얼레, 썰매 등을 곧잘 만들곤 했던 아이의 재능을 살려주기로 마음먹은 아버지는 아들의 인생을 만들어 주게 됐다. 전북 진안군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방대근의 아버지는 당시 경찰이었다. 작고한 권세병 스승과 아버지는
세번째 인생을 사는 사람 목가구디자이너 김대식 샐러리맨에서 사진기자로, 가구제작자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온 목가구디자이너 김대식. 기자시절 우연히 취재를 갔다가 그길로 천직이 되어버린 가구를 만드는 일. 그 흥미진진한 인생 얘기를 경기 도 양주군에 위치한 공방을 찾아 들어보았다.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 그의 공방은 고생해서 찾아간 보람이 있었다.한 여름의 풍성한 햇살을 받고 푸르게 자라는 각종 푸성귀들로 가득 매운 텃밭은 그가 여름 내내 먹고 지낼 수 있는 양식으로 가득했다. 남들이 들으면 참으로 엉뚱할 만한 그의 인생은 그곳에서 다듬어지고 있었다. 진정한 목수가 되기 위해...기자생활 접고 시작한 가구제작 그는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가구디자인을 전문적으로 배운 일도 없다.문화일보에서 사진
옹이의 아름다운을 배우기까지 승조각 한양목공예학원 김용춘 원장 국내 유일의 목공예학원으로 31년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한양목공예학원은 국내에 목공예를 활성화 하는데 누구보다 큰 공을 세웠다. 스승에 이어 5년째 한국목공예학원을 지키고 있는 김용춘 원장의 목공예 사랑을 들어보자. 남원에서 서울로 그의 고향은 남원이다. 어려운 살림에 초등학교를 마치고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여건이 되지 않아 서울의 한 절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학교를 보내주는 대가로 허드렛일을 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불상조각을 보며 한번쯤 저런 것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중 스승인 신영창 씨가 운영하던 한양목공예학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는데…… 그게 바로 25년 전의 일이다.자신의 어린시절
장승조각, 나무에 나를 맞추는 일 죽령자승보존회 김진식 회장 죽령을 내려가는 소백산 어귀가 떠들썩하다. 한바탕 장이라도 선것처럼.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정겹게 서 있는 장승과의 어우러짐, 죽령장승보존회의 장승축제 현장이다.올해로 4년째 장승축제를 개최하고 있는 죽령장승보존회의 김진식 회장을 만났다. 잊혀져가는 장승의 대중화 “하루종일 나무와 씨름을 하다보면 온몸에 송진냄새가 진동합니다. 장승은 내가 임의로 나무를 깎는다기보다는 나무의 모양에 따라 그 나무의 성질을 최대한 살려가며 조각을 한다는 것이 매력입니다.”지난 2일부터 영주 죽령고개에서 열린 장승축제를 주관한 장승보존회의 김진식 회장은 이렇게 장승에 대한 말문을 열었다.같은 나무로 만드는데 하나도 같은 얼굴이 없는 장승은 그런 면에서 사람과
한국 냄새 나는 목각인형 김영민 나무샘 대표빗자루로 별을 따려던 순진한 소년은 그 순수함을 담은 인형을 만드는 게 최대의 꿈이다. 인생의 3/4을 나무와나무와 함께 한 인생 30년. 30년의 세월이 적지 않은 만큼 그의 나이에 의심이 간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마흔문턱에 들어선 그가 30년간이나 나무 속에서 생활했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게 당연하다. 아버지 대부터 목공예를 해왔다는 나무샘 대표 김영민은 자연과 누구보다 가까이 살아왔다. 아버지와 형에 이어 가업을 잇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예전에는 공예라는게 배고픈 직업이었고 생활고에 찌들리는 공방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자신만은 이 일을 배우지 않겠노라고 결심했단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님마저 산에서 돌아오지 않게 된 이
가야금이 빚어내는 퓨전음악 중요무형문화재 악기장 보유자 고흥곤 생계를 위해 시작한 악기제작에서 남다른 재능을 발견하고 국악기 개발의 국내 일인자로 손꼽히기 까지 고생의 세월을 감내한 중요무형문화재 악기장 고흥곤. 위대한 한국의 소리가 전세계에 울려 퍼지기 까지 그의 노력은 계속 될 듯하다. 퓨전 음악을 만들어내는 국악기아담하게 지어진 2층 양옥 문으로 들어서자 한눈에 들어오는 목재창호와 인테리어가 영락없이 한국적인 냄새가 난다. 종로구 창신동에 위치한 고흥곤 국악기 연구원의 모습이다. 사람과 집이 닮아 있다는 표현이 옳을까. 국악기 연구원을 운영하는 고흥곤 악기장은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어 ‘한국적인’것과 ‘서양적인’그것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작업실 한쪽에 세워져 있는 묘한 악기가 눈에 들어온다.
대나무처럼 곧고 강직하게 서울시 무형문화재 오죽장 보유자 윤병훈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 곳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는다. 뎌러코 사시예 프르니 그를 됴햐 하노라.-윤선도의 오우가 중에서 버려지는 대나무가 바꿔버린 운명 소위 잘 나가는 이십대 청년 무역인이 장인으로의 험난한 길을 걷도록 만든 대나무. 40여년 전 그가 한창 시계무역을 하던 시절, 우연히 지나던 길에 충남 부여 부근에서 대나무를 베어버리는 걸 보게 됐다. 아까운 생각이 들어 버려지는 대나무를 가져다가 이것저것 만들면서 당시에 주머니에서 돈이 마르지 않는다던 시계무역사업을 포기해버렸다. 그렇게 처음 대나무를 만난 인연으로 그동안 전수되지 않고 있던 죽장수업을 홀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무역업을 계속했더라면 고생도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