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입구에 서 있던 나무 장승 이야기
박찬수 목아박물관장/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

 
Image_View요즘은 마을 어귀나 회사 앞뿐 아니라 음식점, 가정집에서도 흔하게 장승을 볼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앞 다투어 마을 어귀에 장승을 세웠고 장승조각공원 또한 많이 생겨났다. 하지만 정작 우리문화가 소중하다는 인식과 조형물로서 역사성이 있는 민족적이고 독특한 것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역사학자나 민속학자에 따르면 장승의 역사는 고려시대나 신라시대부터 시작되었는데, 국경이나 마을입구에 세워 외침(外侵)을 막고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였으며 이정표와 같은 역할도 해왔다. 때로는 장승이 도깨비나 사찰의 수호신인 금강역사·사천왕처럼 무서운 얼굴로도 만들어졌는데, 이는 전쟁이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돌때 국가나 마을의 무사태평을 빌어주며 우리들을 묵묵히 지켜준 수호신이 되었다.
또한 국가가 태평하고 풍년이 들어 모두의 마음이 행복하고 편안해졌을 때에 빙그레 웃으며 서있는 장승은 슬프고 괴롭고 힘든 마음을 다 씻어주는 역할을 해왔다. 일본에게 우리의 마음을 다 빼앗겼을 때도 장승만은 마을입구에 우뚝 서 일본을 내쫓겠다는 듯 인상을 ‘팍팍’ 쓰며 주권국가로서 독립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었다.
장승은 우리 민족과 더불어 희비애락(喜悲哀樂), 생사고락(生死苦樂)을 다 같이 한 스승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이다.
장승을 조성할 때에는 마을에서 가장 착하고 효성이 지극한 사람을 뽑고, 정월대보름이나 장승을 세울 때까지 남녀 간의 잠자리도 피하고 절대 부정한 생각을 하지 않으며 매일 목욕재계를 한다. 그 후 나무를 고르는데 천하대장군은 마을 앞산 양지 바른쪽, 지하여장군은 마을 뒷산 음지쪽에서 가장 잘생기고 깨끗한 우리네 소나무로 고른 후, 나무를 자르기 전 산신제를 지낸다.
  “하늘땅민족의 조상님이시여- 비록 이 나무로 장승을 조성하여 …… ”
국태민안(國泰民安)과 가족화합(家族和合)을 기원하는 소원을 빌고 소제 후 나무를 자르고 여럿이 협동심을 살리기 위해 함께 나무를 메고 와 자귀와 도끼, 낫으로 껍질을 벗기고 장승을 조각한다. 장승을 조각할 때에는 나무의 뿌리부분이 위를 향하게 머리 부분으로 조각해야 하는데, 나무는 뿌리부분에서 물기를 올려 다시 내리지 않고 잎 부분으로 전부 버리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남쪽의 나이테가 큰 부분이 얼굴로 조각되어야만 균열이 생기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다. 이렇게 조각된 장승을 먹물로 개안하고 오방색을 넣기도 하여 길일(吉日)에 모시게 된다.

우리민족이라면 우리민족의 지혜와 전통인 장승을 바로 이해하고 우리 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애국하는 길이요 올바른 종교관이 아닐까 싶다. 이제부터 다 같이 장승의 고마움과 조상님들의 소중한 마음을 올바로 알아 이 세상을 맑고 밝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어가야만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목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