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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나이에 맨주먹으로부산행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란 소년 강석진은 어린 마음에도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벌어 내스스로먹고살아야되겠다는생각이들 었다.그리하여 그의 나이 1 5살 되던해( 1 9 2 1 ) 도시로 가면 내 힘으로 먹고 살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에 빈손으로 부산행 기차 를 탔다. 물론 무임승차였고 한마디로 그 당시사춘기에흔히있는가출이었다. 부산역에 도착한 소년 강석진은 당장 먹을 것이 없고 잘 곳이 없어 이리저리 헤 매고 다녔다. 그리기를 몇날 며칠을 보냈 는지….어느날그는좌천동에있는한가구공장 에 들어가서 밥만 먹여주면 일을 하겠다고 사정을했다. 그가구공장의주인은日本人 이었는데, 남루한 옷을 입고 유난히 키가 작은 아이가 며칠을 굶었는지 눈만 반짝이 는 것을 보고는 불쌍해서 그랬는지는 몰라 도 심부름이나 하면서 일을 배워보라고 했 다. 아마도 그 일본인 사장은 비록 외모는 남루하였지만 그의 눈동자에서 풍기는 열 기를언뜻보았는지도모른다.숙식을해결하게된소년강석진은그日本人사장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랐다고 그당시의생각을후일지인들에게자주말 하였다고한다.무일푼으로 고향을 떠난 그 순간부터 이 일자리를 얻기 전까지의 부산에서의 생활 은 보지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어려운 상 황이었을것이다.강석진 씨는 후일에도 그 당시의 상황을 누구에게도 자세히 말을 한 적이 없어 알 수는 없으나 아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먹고자는일이그가당면한최대의과제였 을것이라고생각될뿐이다.그러니日本人가구공장에서심부름꾼겸 견습공으로일을하며숙식을해결할수있 었던것은그에게는최대의기쁨이었다. 이것이 그의 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출발 점이되리라고는그당시에는그자신도몰 랐을것이다.숙식을 해결하였다고는 하지만 말이 숙 식이지 밤이 되면 가구공장 뒷 켠 작업장 한 구석에 여기저기 널려있는 대패밥을 긁 어모아서 그것으로 요이불을 삼아 새우잠 을 자는 것이 숙이었다고 했다. 점심은 고 구마로 떼우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제재목 을 리어커에 싣고서 직매소를 가다가 배가 고프면 호주머니에서 고구마를 꺼내 먹는 것이점심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 강석진은 아침 일찍 일어나 근무시간이 되기전에 작업장 을 깨끗이 청소 하였으며 근무시간이 되면 목수 옆에서 잔심부름을 하면서 목공기술 을어깨넘어배우곤했다.목공의 기술은 손재주로 판가름 난다고 하는말이있다.그는 노력도 했지만 원래부터 소질이 있 었던것같다.후일 강서진 씨는 그때를 생각하며‘내 가 생각하기에도 남보다 빠르게 목공일에 익숙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하곤 했다.그래서 그런지1년이채 못되어서그 보 다 몇 달 앞서들어온 선배들 보다 훨씬 일 을더잘해냈다고했다.때로는 허기에 지쳐 작업도중 현기증이 나서쓰러지는일도몇번있었으나그때마 다 쓰러지면서까지 하던 일을 끝까지 마무 리 짓곤 하였다고 한다. 이것을 보게 된 일 본인 주인은 어떤 때는 공구셋트까지 선물 로 주면서 칭찬을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월급을조금올려주기도하였다고한다. 김상혁 shkim@woodkorea.co.kr 2008년 12월 1일 제 2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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