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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로 북적대는 황학동 시장을 지납니다. 새로운 것이라곤 없는 쓰다남은 중고물건들만 가득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한 자리에 모인 풍경은 마냥 신기하기만 합니다. 점판 위로 가득 널려진 물건들이 보기만 하여도, 도대체 이 많은 것들이 어디서 나타났지 싶은데, 사실 좁은 골목과 길을 빼곡히 매운 사람들 역시, 도대체 어디서 왔을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그렇게 물건과 사람들이 엉킨 바다 한가운데 배처럼 떠 있던 것이 있었습니다. 큰 길로는 도무지 출입구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뒤로 난 허름한 계단을 우연하게 찾은 후에야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비디오들이 화분들처럼 계단에 쌓이고, 노란색의 페인트가 벗겨진 어두운 계단실에는 옆으로 쌓아 가운데가 빈 시멘트 블록이 패턴을 이루며 묘한 느낌을 자아냈습니다. 사람이 살고 있을까 싶게 그을리고 버려진 공간, 움츠러드는 눈에 커다란 빨간 글씨가 보였습니다. ‘주거권 쟁취! 단결투쟁!’ 지금은 청계천 북쪽으로 2층 상가만을 몇 개 남긴 채, 사라진 삼일아파트는, 아래는 상가를 두고, 위로는 주거용 아파트를 지은 최초의 시민 아파트였습니다. 1969년 청계천 복개와 함께 들어선 당시로서는 ‘최신식 주택’으로, 특이한 점은 내부 마감을 하지 않고 분양하여, 입주자가 자기 취향이나, 형편에 맞게 집을 꾸미고 들어갔다는 점입니다. 외관을 보면 거의 비슷한 모양에 그 안에 있는 단위세대도 똑같을 것 같지만, 사실은 동마다 다른 평면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아파트처럼 관리 규약이 있지 않아, 사는 방식에 맞게 세대 안팎으로 꾸미고 사는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잘 정돈된 모습은 아니어도 답사 내내 흥미진 진하였습니다. 여기 한 장의 그림이 있습니다.삼일아파트 15동의 어느 세대 평면입니다. 안에는 방이 2개에부엌, 그리고 내부에 작은 화장실이 있습니다. 뭐 요즘의 아파트 평면과 다르지 않게, 네모난 공간에 방들이 들어서있는가 싶습니다. 하지만, 유심히 보면 여기엔 뭔가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먼저, 편복도 한 켠엔 화단이 있는데, 1미터 폭은 되어보이는 곳에, 땅에서 자라난 것처럼 나무와 화초가 심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옆으로는 연탄이며, 허드레 물건을 넣어두는 창고가 있습니다. 출입문도 이상해서, 현관문 말고, 부엌에서 아파트 복도로 나오는 또 하나의 문이 있습니다. 또 부엌에는 얕지만 위로 다락을 두었습니다. 부엌 바닥보다 방이 높아, 상을 차리면 돌아가지 않고 방 안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낮은 창도 있습니다. 이 정도면 슬슬 ‘이게 왜 그럴까?’ 의문이 싹틉니다.어느 날 문득 알게된 것은 바로 삼일아파트 단위세대의 모양이란, 아파트가 있기 전 우리가 오랫동안 살아왔던 집, 한옥의 구성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편복도는 마당에 해당하고, 화단과 창고는 텃밭이나 장독대, 창고 등이 되며, 부엌으로 통하는 문은 당연히 마당으로 통하는 다른 출입구인 셈입니다. 여기에 다락이며, 안방과 사이에 낮은 창이야말로 그대로 한옥에 있던 것이 옮겨진 것이라 하겠습니다. 콘크리트 박스인 아파트에 들어가기 위하여, 마치 공상영화 ‘트랜스포머’에 나오던 외계로봇 생명체처럼, 땅 위에 있던 집, 한옥은 자신의 몸을 변형하여 아파트라는 틀 속에 들어간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옥의 이러한 생생한 특징은 더 이상 그 안에서 꽃 피지못하고, 편리성과 쾌적함을 쫓아 아파트는 저 혼자의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글/사진_구가도시건축연구소조정구대표 2009년 3월 16일 제 2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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