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왕국을 이루었던 부산시 용당동 앞바다.

통나무 원목이 떠 있던 ‘저목 도크’에 낚시꾼이 줄을 잇는다.

수출용 합판을 실어 나르던 컨테이너 차량행렬도, 원목을 자르던 톱니의 소음도 멎었다. 합판왕국 동명목재(창업주 강석진, 72세)가 문을 닫은 지 7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주인도 종업원도 뿔뿔이 흩어졌고 텅 빈 공장건물과 굴뚝만 우뚝하다. 흥청대던 한 때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고, 회사 앞 18개 식당 중 12개가 문을 닫았다.

111가구, 534명의 동민이 줄었고 용당국민학교 학생도 100여 명이나 학교를 옮겨갔다. 정문 앞 금삼차집 주인 임영자 씨(42세, 여)는 앉을 자리 없이 붐비던 것이 지금은 하루 1~2잔도 안 팔린다고 말했다. 전주식당 주인 이여기 씨(31세, 여)도 종전 하루 10만 원 매상에서 요즘은 7000~8000원으로 줄었다고 했다.
창업(1925년)에서 도산(1980년 7월)까지 55년, 용당동에 자리 잡은 지 17년만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합판을 수출하기 시작해서 3년 연속 수출왕(68~70년), 개인소득 전국 1위를 자랑했던 동명목재. 동명목재의 침몰은 ‘기업이 망하면 기업주도 망한다’는 새로운 교훈을 남겼다.

동명목재의 몰락은 합판업계의 불황, 무리한 기업 확장, 경영진의 불화 등이 원인이었다. 뒤늦게 구제금융 요청, 사주 개인재산 헌납 등 재기에 몸부림치다 지난 5월7일 임시휴업한 것이 영영 폐업의 길이 되고 말았다. 설마 하던 불안이 눈앞에 닥치자 3천여 명의 종업원들은 정상조업추진위원회를 만들고 농성과 시위를 했다. 그러나 사공을 잃은 배가 침몰할 것은 뻔한 일, 사주 강석진 씨는 7월5일 종업원 해고통보로 백기를 들었다.

국보위는 사주 강 씨와 그의 부인 고고화 씨(70세), 장남 강정남 씨(42세)의 개인재산을 헌납 받았다. 종업원 3천여 명에게 퇴직금도 지급됐다. 그 중 770여 명에게는 일자리도 알선됐다.

강 씨 일가 3명의 미담보재산 79억 원을 헌납 받아 개인주택을 빼고는 부산시 재산으로 넘겼다.

원목 등을 하역하던 부두시설 60만 평은 감정원 감정액으로 504억 원, 그 중 49만 평(484억 원)은 해운항만청에서, 나머지 11만 평(20억 원)은 부산시가 사들이기로 했다. 부인 고고화 씨는 남은 재산으로 여자 전문대학을 세우겠다고 희망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강 씨 일가의 나머지 재산으로 남천동 5천 평 대지에 4층짜리 문화회관을 짓기로 했다. 강 씨 부인의 이름을 따서 고화문화회관으로 하기로 했다. 강 씨 일가족 3명에겐 현금 10억 원과 가옥 2채씩 모두 16억 원의 재산이 생계를 위해 주어졌다.

회사 정문에는 아직 간판만이 아쉬운 듯 남아있어 대기업의 몰락이 준 충격과 교훈을 말해주고 있었다.
 

저작권자 © 한국목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