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살고 있는 인생보다 우리가 알고있는 목공이 누군가에게는 한 평생 같이해 온 동반자이자 친구이자 스승이였다. 50년동안 꾸준히 묵묵히 목공의 길을 가고 있지만 그가 목공의 길을 걷는 이유와 목적은 단 하나,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을 알리고 싶어서다. 좋은 나무를 함께하면 편안하고 즐겁다는 사실을 그대가 아는 것 이상으로 아닌 더 많이 알리고 싶다는 가풍국 소목장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목재와의 인연,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예전에는 땔감을 이용해 살았기 때문에 나무를 산에서 직접 해왔습니다. 사실 나무와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창호, 문 이렇게 작업을 하고 있는데 소목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형님이 이렇게 작업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어깨너머로 배우다 보니 소목장 일을 하게됐습니다. 군대 제대후 일본 스미토모 건설회사 목공부서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에 28살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6년 동안 일을 했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본격적으로 전통적인 창호를 만들기 위해 배움의 길을 걷게 됐고 소중한 인연을 맺고 있는 나무에게 보답을 해주고 싶어 그 보답으로 나무 이름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떤 나무가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 나무의 종류가 워낙 많다보니 잘 아는 사람은 몇 안될 겁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국산 나무를 수집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나무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저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지역에 신기한 나무가 있다고 말해주면 꼭 가서 보고 수집해 왔습니다. 지금도 제주도에 신기한 나무가 있다고 하면 바로 달려가곤 합니다.

뜻 깊은 복원작업
사실 옛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들을 복원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작곡가인 故홍난파 선생의 작곡사무실의 복원작업에 참여해 창문을 복원해야 했는데 올리고 내리는 창문이었습니다. 그때 당시와 똑같이 복원하려면 기존의 자료 등이 있어야 수월하지만 이렇다할 자료가 없어 이야기만 듣고 복원을 했습니다. 1층에는 현대식 문이 달려 있고 2층에는 일본식 문이 달려있었는데 일본에서도 일을 했기 때문에 그 모양 그대로 복원을 할 수 있었습니다.

명장이 되기까지의 쉽지않았던 과정들
사실 누가 명장을 신청한다고 하면 말리겠습니다. 그만큼 힘든 과정들이 많기 때문이죠. 후배도 양성해야 하고 사실 처음에는 명장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명장이 되기 위해서 목공을 한것은 아닙니다. 목공을 하다 보니 뭔가 목공분야에서 최고가 되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고 기초부터 하나하나 신경써가면서 작업했던 것들이 밑거름이 돼 명장 신청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류과정이 굉장히 어려워 준비과정에 7년이나 걸렸습니다. 인내가 없었더라면 7년의 준비과정을 못 버티고 그냥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목공 명장이라고 해서 목공만 뛰어나게 잘하는 부분만 평가해 명장을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각 분야에서 점수를 받아야 했습니다. 사회기여도, 새로운 제품들을 준비했는지 등 준비하고 노력해야 할 부분들이 많았지요. 그렇게 준비과정을 걸쳐 명장이 되었지만 사실 얻은것도 있지만 잃은것도 많습니다. 일을 할 때 명장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붙어 다녔기에 명장이 그것도 못하냐는 식으로 바라볼 때 정말 힘들었습니다.

소목,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라
목공 작업은 어렵고 힘들 일이라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렇지만 목공을 너무 쉽게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이든 배우려고 하면 끝까지 배워보려는 인내를 키우셨으면 좋겠습니다. 적당한 배움은 없습니다. 이점을 명심하고 목공을 하셨으면 합니다.
또한 앞으로는 나무들의 식별을 잘 못하는 탓에 이름이 점점 사라지고 잊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는 수집을 활용해 자손들이 볼 수 있는 교육용 자료들이 많이 생겨나고 활용도 많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작권자 © 한국목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