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손길을 거친 한옥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섬세함과 디테일. 그가 지은 한옥은 무겁거나 중후하지 않다. 부재를 두껍고 무겁게 사용해 몸집을 불린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기술이 아니다. 그 때문인지 그의 한옥은 가볍고 섬세하며 깔끔하다. 멀리서 보아도 훌륭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관찰하면 더욱 더 걸작, 즉 작품이다.
이광복 도편수는 현재 전통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목운한옥’의 대표이자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의 부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옥교육기관인 ‘지용한옥학교’에서 교수직을 맡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목수의 길을 걷기까지
10년이면 강산도 변하지만, 장인의 앞에서 그 법칙은 통하지 않는 법이다. 한옥 짓는 목수였던 아버지의 재능을 타고난 이광복 도편수가 목수의 길을 걸어온 것은 벌써 수십 년째. 단 한번도 흔들리지 않고 오롯이 목수로서 한 길만을 걸어왔다.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열일곱 되던 해 정식으로 목수의 길에 입문했다. 기능장으로 입문해 기술을 배우며 목재와 인연을 갖게 됐고,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직업훈련학교에서 건축과 교사로 재직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시설이나 건물을 짓고 수리하는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인연이 닿아 송광사 대웅보전과 보탑사 3층목탑을 창건한 故 조희환 도편수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됐다.
故 조희환 도편수는 목수들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목탑을 완성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목수로, 그의 아래에서 목수로서 기반이 되는 많은 기술들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스승이 돌아가신 후 이광복 도편수 기문으로 독립해 활동하기 시작했고, 많은 작품들을 통해 섬세하면서도 디테일한 목공 실력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목수들의 우두머리 ‘도편수’
대목장이라 함은 나무로 집을 짓는 목수들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말로 도편수라는 호칭은 조선시대 행정조직의 하나를 뜻한다. 조선후기 건축공사를 담당하던 기술자의 호칭이었으나 현재는 대목장과 동일한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도편수의 역할에 대해 묻자 이광복 도편수는 집을 지으려면 소유자가 있어야 하고, 집은 그 소유자의 격을 대변해야 한다고 했다. 집은 사람을 담는 그릇이며 도편수는 그 격을 담아집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어떠한 건물을 짓던 간에 작업에 들어가기 전, 집을 짓고자 하는 이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고 이해하려고 한다. 자신의 집을 짓는다는 생각으로 지은 것이 세월이 흐르니 그것이 남의 재산이 아니게 됐다. 이제는 전부 그 자신의 인맥으로, 경험으로 귀중한 재산이 됐다. 이광복 도편수의 원동력은 거기에 있다.

대한민국에서 한옥을 짓는다는 것
기자의 질문에 이광복 도편수는 “아주 중요한 질문”이라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는 한옥에 대해 알려면 먼저 우리 선조들의 생활 그리고 역사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우리가 과거 건물을 목재로 지었던 까닭은 주변에 나무, 즉 목재라는 자원이 많았기 때문이다. 목재는 무한한 재생이 가능한 자재다. 지적 능력이 탁월했던 우리 선조들은 자원을 아끼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나무로 된 집을 계속해서 지어왔다. 나무라는 것은 사람의 노력에 의해 심어두면 100년, 200년 후에도 후손들이 나무를 활용할 수 있지 않은가. 선조들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한옥을 짓는다는 것은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이어받는 일이다. 잘 지어진 한옥 건물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한옥을 짓는 것은 목재를 통한 전통을 후손들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그는 자신을 ‘문화의 한 전달자’라고 표현했다. 자신이 지은 한옥을 통해 내 세대의 문화와 다음 세대의 문화가 융합되고 조화를 이루기를 바라고 있었다.
“장인은 문화유산을 만들고 문화유산은 문화국민을 만든다, 그것이 나의 타이틀이다”

저작권자 © 한국목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