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종합목재(풍산목재) Ⅰ

1980년대에는 전국에 2,000여개의 제재소가 있었으나 1990년대 들어 1,600여개로 줄어들었고, 2007년도에는 전국에 제재소가 600여개만 남아있을 정도로 제재소들이 경쟁력을 잃고 있는 가운데, 현재까지 37년간 꾸준히 성장해오고 있는 제재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경기도 광주에 있는 ‘PS종합목재’이다.

금강마루판으로 사업시작
현재 PS종합목재 회장직을 맡고 있는 유승봉 회장(1945년생, 70세)은 1976년 마포구 도화동에 ‘금강마루판’이라는 회사를 설립하는 것으로 목재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유승봉 씨는 32세로 지인 4명과 동업으로 ‘금강마루판’을 설립했다. 유승봉 씨는 금강마루판을 2년간 운영하다가 1978년 다른 지인 3명과 함께 ‘동도상판’이라는 회사를 설립했고, 1979년에는 그의 동생인 유승근 씨(1951년생, 당시 29세)와 함께 ‘미주루바’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여기서 많은 돈을 벌게 된 유승봉 씨 형제는 1982년 성동구 성수공단 내에 ‘풍산무늬목재공업사’를 설립하고 무늬목업계에 뛰어들기도 했다.

1984년, 풍산종합목재 설립
성동구 성수공단 내 풍산무늬목으로 돈을 많이 벌은 유승봉 씨 형제는 1984년 5월, 송파구 석촌동으로 회사를 이전하고 상호를 ‘풍산종합목재’로 변경했다. 이때 성남시 복정동에 있는 성남제재소를 매입하고 상호를 풍산제재소로 바꿨다. 1984년의 송파구 석촌동은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았을 때였다. 지금과 같이 롯데백화점이 들어오지도 않았을 때이다.
1980년 당시 송파구는 집값이 평당 20만원할 때였다. 그러던 것이 1982년에는 집값이 평당 70만원으로 뛰었다. 당시 한국일보 조사에 의하면 서울시에서 땅값이 가장 많이 오른 지역이 송파구였다. 1984년은 전두환 대통령 때이다. 당시 3저 현상을 타고 대한민국 경제가 한참 좋아질 때였는데 전두환 대통령은 강남개발을 기치로 들고 나왔다.
1985년 당시 서울시는 한강 물놀이의 명소인 뚝섬을 한강종합개발사업에 포함시켰다. 뚝섬 돌출부분 45%를 잘라내는 등 본격적인 유원지 개발 사업을 했다. 당시 말죽거리를 개발한 장본인도 전두환 대통령이었다. 지금은 말죽거리가 어딘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에서 권상우라는 배우가 나오는 것만을 기억할 뿐 말죽거리가 어느 곳인지 알지를 못한다.

1986년 10월, 석촌동에 풍산빌딩 사옥 준공
유승봉 씨(당시 42세)는 송파구 석촌동에 부지를 매입하고 사옥을 지었다. 그리고 빌딩이름을 ‘풍산빌딩’이라고 했다.

1989년 풍산 창호 설립
1989년 3월, 유승봉 씨는 서초구 내곡동 가구단지 내에 부지를 매입하고 창호 공장을 지었다. 그리고 상호를 ‘풍산창호’라 했다.
1989년은 노태우 대통령이 주택건설 200만호를 짓기로 공약한 2년 째 되는 해였다. 당시 주택건설 부문은 갈수록 열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주택건설 및 설비 공사업체들의 창업이 계속 활기를 띄워 이 시기에 설립된 회사들이 무척 많았다. 업종별로 볼 때 건설업, 무역업, 금속 분야의 창업이 활발했다.
또한 1989년에는 이건산업(대표 박영주)이 경영다각화의 일환으로 창호사업을 추진중일 때였다. 이건산업은 반월공단 내에 공장부지 3000여 평을 확보해 놓고 신규 사업 품목을 물색했는데 당시 빌라, 호텔, 오피스빌딩 등에 많이 쓰이는 창호를 만들 것을 준비중 이었다.
1990년 필자는 서교동에 5층 건물을 지었는데 그때만 해도 목수들이 일일이 대패질을 해서 창문틀을 만들 때였다.

1994년 5월, 풍산목재 법인 전환
유승봉 씨 형제는 1994년 5월 ‘풍산종합목재’를 법인으로 전환하고 상호를 ‘주식회사 풍산목재’로 개명했다. 유승봉 씨는 이때까지 개인으로 사업을 운영해 오다가 18년 만에 법인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때 유승봉 씨(당시50세)는 회장으로 물러나고 동생인 유승근 씨(당시 44세)가 사장으로 취임했다.
유승봉 회장은 회사를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주식을 실질화시켜 직원들과 공동 투자해 회사를 운영했다. 당시 직원들에게 아파트 한 채씩은 마련하도록 도와줬기 때문에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회사에 투자토록 했다. 그때 유승봉 회장의 지분은 51%, 직원들은 주식의 49%를 나눠 갖고 운영했다. 그러자 직원들의 마인드는 이 회사가 ‘내 것’ ‘자기 것’이라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각자가 사장처럼 일을 하며 밤낮이 없었고, 당시 20억 원이나 되던 외상값이 6개월만에 13억원이 회수됐다. 이때 유승봉 회장은 대출 받은 돈 거의를 갚았다. (주)풍산목재는 지금도 지분의 10%를 직원들이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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