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클보드의 역사 Ⅶ

1991년 1월 거성산업, 아산에 PB공장 건설
인천의 거성산업(대표 김동수)은 1991년 1월, 충남 아산에 대지 1만9천평을 마련하고 건평 6,100평의 PB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일산 400㎥(년산 12만㎥)의 규모로 짓게된 이 공장건설에는 40억원이 투입됐으며 공장이름을 동인보드(당시 대표 이방희)라 지었다. 당시로서는 국내 최대 규모의 파티클보드 공장이었다.
동인보드의 파티클보드 기계설비는 전 공정이 최첨단 마이크로프로세스 제어방식으로 작동하게 돼있었고, 특수재단기가 설치돼 다양한 규격을 자유자재로 생산할 수 있는 설비였다.
즉 6~35㎜까지의 전 규격을 생산할 수 있었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16m 컨트롤프레스에 의해 생산됨으로써 제품물성간의 편차가 전혀 없는 제품이 생산됐다. 거성산업은 공장 착공 9개월만에 공장을 완공하고 1991년 10월 본격가동에 들어갔다. 거성산업은 이에 앞서 1989년 8월 300억원을 투입, 년산 9만㎥ 규모의 MDF 공장을 건설한 바 있다.
이로써 거성산업은 MDF 공장과 PB 공장을 가동하는 공장으로서 연 매출액이 370억원으로 늘어났다.

거성산업(居星産業)
인천의 거성산업(대표 김동수)은 미송 제재업체이자 미송 수입업체였는데 어떻게 충남 아산에 MDF 공장 및 PB 공장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거성산업 김동수 사장은 1970년 작고한 부친으로부터 서울 변두리의 허술하고 작은 제재소 하나를 물려받았다.
그는 한양공대 4학년에 재학중이었는데 1970년 부친이 작고하자 제재소 사장을 떠맡으면서 학생 경영인이 됐다. 그는 우리나라 목재산업이 수출우선정책으로 돼있는것에 착안,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미송을 수입해 제재목으로 만들어 수출하기로 했다. 미송 수입 전선에 본인이 직접 좋은 나무를 싼 값에 수입하고 사온 나무는 컴퓨터를 이용해 제재함으로써 타 회사보다 수율을 높였다.
그 결과 제재목을 연간 1,500만 달러를 수출함으로써 1986년 수출의 날 천만달러 수출상을 수상하면서 세인을 놀라게 했다. 당시 거성산업은 이름 그대로 목재업계에 떠오른 큰 별이었던 것이다.

1991년 3월 대성목재, 제2 PB공장 착공
1986년 1월 1일 유원건설(회장 최효석)에 인수된 대성목재는 당시 불어닥친 3저 현상에 힘입어 인수된지 1년만에 만년 적자를 벗어나서 450억원의 흑자를 냈다. 이에 따라 대성목재(대표 이영기, 유원건설 최효석 회장의 처남)는 1991년 3월, 또 하나의 PB 공장 건설에 나섰다.
총 투자비 280억원을 들여 독일의 짐펠캄프社 첨단 자동화 설비를 수입해서 일산 400㎥(년산 12만㎥) 규모의 PB 공장을 월미도에 짓기 시작했다.
착공한지 9개월만인 1991년 12월 공장을 완공했으며 한달간의 시운전을 거쳐 1992년 1월 가동에 들어갔다. 대성목재 월미도 공장에 지어진 대성목재 제2 PB공장은 월미도 공장 대지 8,600여평에 건평 4,000평 규모로 지어졌으며 독일의 짐펠캄프社 첨단 자동화 설비를 설치했기 때문에 그동안 국내에서 생산하지 못했던 두께 6㎜ 제품과 30㎜ 이상의 제품 생산이 가능케 됐다.

1991년 6월 성창기업, PB 공장 착공
1991년 6월, 부산의 성창기업(대표 정해린)은 경남 울산군 가천리 일대 성창기업 소유 2만여평의 부지에 건평 3,600평의 공장 건물을 짓고 파티클보드 공장건설에 착수했다.
총 사업비 450억원을 투입해서 독일제 최신 PB공장 기계 설비를 수입해서 일산 400㎥(년산 12만㎥)규모의 파티클보드 공장을 1992년 12월 완공했다. 한달간의 시운전 가동을 하고 1993년 1월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이로써 성창기업은 연간 250억원의 수입대체 효과를 거뒀다.

1990년대 목재업계, PB 사업에 잇단 참여
1990년대 들어 목재업계에서는 파티클보드 사업에 신규로 참여하는 업체가 늘어나서 파티클보드산업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목재업체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당시 신도시 건설 등으로 파티클보드 국내 수요가 급신장하고 있는데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생산량만으로는 국내 수요를 충당하지 못해 수입품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1991년 1월, 인천의 거성산업(대표 김동수)은 충남 아산에 ‘동인보드’란 파티클보드 공장을 건설하고 1991년 10월 가동에 들어갔으며, 1991년 3월에는 인천의 대성목재(당시 대표 이영기)는 월미공장 내에 일산 400㎥ 규모의 파티클보드 공장을 짓고 1992년 1월 가동에 들어갔다. 1991년 6월에는 부산의 성창기업(대표 정해린)도 경남 울산에 건평 3,600여평의 파티클보드 공장을 짓고, 1993년 1월 본격가동에 들어갔다.
1994년 4월에는 인천의 동화기업이 세 번째의 파티클보드 공장을 건설하고 1995년 6월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이로써 1990년대에 우리나라는 8개의 파티클보드 공장이 가동되고 있었으며 생산능력도 67만3,000㎥으로 늘어났다. 업체별 생산능력을 보면 동화기업 3개 공장이 22만3천㎥, 대성목재 2개 공장이 15만㎥, 거성산업이 12만㎥, 부산 성창이 12만㎥, 원창흥업이 6만㎥였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가 우리나라 파티클보드 산업의 최고 전성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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