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판산업야사 <4>

1974년의 일이다.
마디카, 사쿠라, 구루미가 Jelutong, Nyatoh, Sepetir로 판명되자 이것을 목재업계에 널리 알려야 되겠다고 생각하고는 74년 "남양재의 규격과 형질"이라는 작은 책자를 발간했다. 필리핀의 원목이 고갈되어 간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당시는 필리핀 원목이 간간이 들어옴과 동시에 말레이시아 원목도 꾸준히 들어오며, 인도네시아 원목이 수입되기 시작하는 무렵이었다. 그때에는 각 나라마다 검척방법과 등급규정이 달랐기에 세 나라의 선별규정을 비교 검토해 책자의 내용으로 삼았었다.
이것을 본 大成木材 盧전무께서 "이런 사람이 주재원으로 나가야지 어떤 사람이 주재원으로 나가냐"며 필자를 말레이시아 주재원으로 파견했던 것이다.

농과대학 출신, 해외 주재원으로 처음 파견되다
Image_View이제까지 商科大學 출신들만이 해외 주재원으로 파견됐던 시절에 農科大學 출신으로는 처음 해외 주재원으로 파견되어지는 계기가 됐다.
당시는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려면 상공부(현 산업자원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상공부에서 치르는 영어시험을(작문, 문법, 회화, 독해력) 봐야했다.

외국 나가기가 어려웠던 시절이라 어렵게 말레이시아 비자를 얻어서 도착한 곳이 말레이시아 Tawau로 인구 2만여 명이 모여사는 작은 도시였고 전임 주재원 이상언씨(현 선경주식회사 전무)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차를 타고 여기저기 안내를 해주며, 합생, 택관 등 사무실도 친절하게 가르쳐 주며 인수인계를 했다. 그러더니 필자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야자수 나무 밑에 차를 세웠다.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필자에게 빨리 그 밑에 가서 서라는 것이다. 카메라를 꺼내면서 증명사진을 찍어야 된다는 것이다. 무슨 증명사진이냐고 그러니까 여기서 한 두세 달 지나면 이 야자수 나무가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 테니, 지금 찍지 않으면 일년 이삼년 있어도 야자수 나무 밑에서 사진 찍을 기회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당시 중국 화교가 40% 정도였는데, 그들이 상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걸어다니거나 버스를 주로 이용하는 원주민들은 대부분 노동일에 고용되고 있었는데, 문화 시설이라고는 오로지 허름한 극장뿐이었다.

그러기에 월급 외에 벽지수당이라는 것을 지급하고 있었다. 가족수당 등등 각종 수당을 합하면 수령액이 당시 국내 상무급 월급이었다. 국내 상무급이 30여万원 받을 때였는데, 800달러 정도를 받았으니, 당시 환율이 420원 할 때이니까 33万여 원 정도 됐다.

그러나 국내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생활비는 많이 들었다. 왜냐하면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잘 먹지 않는 배추, 마늘, 파, 고추 등 비싼 수입품을 구입해 먹어야 했고, 쌀도 그 나라 쌀 외에 비싼 찹쌀을 구입해야 하는 등, 사과, 포도도 상당히 비쌌는데 수입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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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있는 光明木材는 하루생산 3만 枚 정도의 규모로 당시로서는 적은 규모의 합판회사였다. 그러나 박영주씨(현 이건산업 회장)라는 "사람을 주요시하는 철학"을 가진 유능한 경영진을 갖추고 있었다.

일찍이 1966년경에 필리핀에 권영빈씨(현 천산실업 사장)를 주재원으로 파견하고 있었고, 말레이시아에 차학진씨를 주재원으로 파견할 정도였다.

당시 合板會社의 주재원으로는 1965년에 대성목재에서 필리핀에 파견된 이민웅씨(대한민국 合板會社 주재원 1호)가 있었고, 그 후 67년에 필리핀에 문공훈씨(서울상대출신), 김영열씨(고려상대출신), 말레이시아에 김영휘씨(서울상대출신), 박봉규씨(서울상대출신), 홍콩에 김재광씨(서울상대출신), 부산 성창기업에서 김창봉씨, 김성기씨(신흥개발에서 현지 채용, 서울 문리대 불문과 출신)등이 있을 정도였을 때이다.
그러던 光明木材는 75년경 은행관리업체로 들어가게 되자, 光明木材 사장의 사위이면서 전무였던 박영주씨를 사장으로 임명하여 경영을 맡기게 된다.

Image_View박영주사장은 말레이시아에 박민학씨(현 태산실업 사장)를 주재원으로 파견하고, 말레이시아에 있던 차학진씨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주재원으로 임명하는 등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
박영주전무가 사장을 맡고 나서부터 경영이 호전되자 박 사장의 장인이신 박회장은 아들들(박종길, 박종하)에게 다시 경영을 맡기게 되고 박영주사장은 물러나게 된다.

1973년부터 서울에 광명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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