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퍼상을 통해서 원목을 구입하더라도, 그 원목이 들어오는 데는 한달 이상이 걸렸다. 들어온 원목으로 합판을 만들어 출고시키더라도 금새 현금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다.

보통 합판값은 서너달 후에 수금되는 것이 당시 합판업계 상거래 관습이었다. 그러니 회전자금으로 원목구입자금을 충당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사채를 빌리거나, 은행융자를 받아서 합판공장을 운영했다.

필리핀에서 원목 직수입을 시도하다

합판사업이 성공하려면 우수한 기술과 완벽한 생산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원자재의 확보도 중요한 요소이었다.
더구나 수입원자재를 써야하는 합판업계에서는 무엇보다도 원자재의 원활한 공급이 중요한 일이었다.

그 당시도 자금만 있으면 오퍼상을 통해서 원목을 공급받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태성 사장은 언제까지나 외국 오퍼상을 통해서 원목을 공급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들 오퍼상들이 국제상거래에 어두운 합판업자들에게 어떤 마진을 취할지도 알 수 없는 일이고, 원가절감을 위해서라도 원목수출국과 직접 거래를 터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954년 4월, 정태성 사장은 자금력을 총동원해서 외화 10만 달러를 확보한 후 홍콩의 유력한 사업가 한 분을 소개받아 장남인 총무계장 정해덕 씨를 필리핀으로 파견했다. 필리핀에 도착한 정해덕씨가 필리핀 원목수출업자와 계약을 성사시킨 것은 1954년 7월 이었으니 무려 3개월이나 걸렸다.
다른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대금 결제 방법이 문제가 되어 시일이 걸린 것이었다. 원목계약은 성사가 되었지만 선박을 구하는 일이 또 쉽지 않았다.

당시 해운업계가 보유한 선박의 수가 얼마되지 않았고 일본, 미국의 해운업도 활발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가까스로 필리핀에 거주하는 미스터 추안의 소개로 원목수송선 한 척을 차터해서 우여곡절 끝에 그 원목이 부산항에 도착한 것이 1955년 3월이었으니 실로 일년여만에 정태성 사장의 직거래 꿈이 실현되었던 것이다.

대구에서 부산으로 공장을 이전하다

대구에서 합판공장을 시작한 정태성 사장은 시작할 때부터 대구가 합판공장의 입지로서는 부적당한 곳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물동량이 많아지면서 예견했던 여러가지 불리한 문제점들이 실제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원목 소요량이 많아지니 수송난과 저목의 어려움이 더욱 커졌고, 합판판매에도 불리한 점이 많아졌다.

공장을 부산이나 다른 항구도시로 이전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정태성 사장은 알맞는 부지를 구하러 나섰다.

1955년 2월, 정태성 사장은 우연한 기회에 서울에서 대동산업 신사장을 만났다.  신사장은 부산 적기(赤崎)에 위치한 대동산업 창고와 부지를 팔아야겠는데 정 사장이 사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했다.

그렇치 않아도 공장부지를 찾고 있던 정태성 사장은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즉석에서 매입할 것을 약속하고 계약금까지 지불했다.

이 자리가 바로 지금의 성창기업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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