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_View1989년 12월 28일 현대그룹 본사에서 구소련 연해주 산림개발 합작사업의 합의서 서명이 있었다.

현대와 소련측이 50:50 투자하여 1백만㏊ 산림에서 연간 1백만㎥씩 30년간 벌채하여 원목수출 및 목재가공을 한다는 내용이다.

필자는 당시 현대에 근무하며 초기부터 산림개발 사업을 담당했다.

1989년 소련이 대외개방정책을 펴자 현대는 먼저 소련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소련측이 제시한 여러 가지 대규모 합작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하게 된다.

이중에는 목재분야도 있어 청운동 정주영 회장 자택에서 이른 아침 관련 임원들 참석 하에 목재부문 회의가 있었는데 필자도 동석했다.

준비된 자료를 보니 연해주에 있는 제재공장에 현대가 1~2백만불을 투자하는 안이었다.

필자는 단순히 제재, 목재가공 공장에 투자시 수익성이 있다 해도 소련측이 원목 공급권을 쥐고 있는 한 사업이 불안정하고 현대 측은 도움만 주고 실익이 없을 수도 있음을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목재공업의 소요 원자재를 전적으로 해외수입에 의존하는데, 자원보유국의 원목수출 제한정책으로 수급의 어려움이 크므로 소련은 세계 최대의 산림자원국일 뿐만 아니라 우리와 인접해 있어 운송도 유리하고 다양한 수종, 우량한 재질 등으로 산림벌채까지 포함하면 소련 내 합작사업도 안정적이고 우리의 원목수입선 다변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건의했다.

정 회장은 벌목에 관계한 일이 있고 사업의욕이 대단해 전적으로 나의 의견에 동감하고 산림개발까지 포함한 사업계획을 수립토록 했다.

바로 현지 출장을 명받았으나 그해 여름 연해주에 폭우가 쏟아져 교통이 두절되어 8월 하순에야 연해주에 도착했다.

우선 소련측 제안대로 제재 및 칩공장이 있는 목재단지를 보았는데 항만시설도 잘 되어있고, 공장설비는 일본제로 제품도 일본에 수출하고 있었다.

활엽수 혼요림의 천연림에서 양질의 원목이 공급되고 있었다.

며칠 후 정 회장은 현지에 도착해 돌아보고 다른 미개발 지역에서 새로이 원목벌채, 도로, 항만, 공장시설에 투자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불라디보스톡에서 산림청장과의 면담일정이 잡혔다.

회의 자료로 8절지 한 장에 큰 글씨로 요약했는데 매일 보며 추가하다보니 5~6매로 늘어나고, 당일 정 회장은 준비물은 덮어둔 채 일사천리로 회의를 리드하며 결국 스베트라야 1백만㏊ 산림을 제공하여 현대와 합작사업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정회장은 스케일은 크나 거친 면이 있겠지 하는 상상과는 달리 일주일 전부터 상대방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주도면밀하게 구상하는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산림개발이나 목재가공분야는 잘 모를텐데 며칠간 자료를 정리시키며 내용을 파악하고 회의에 임해서는 막힘없이 상대를 설득해 연해주 산림청장도 정 회장에 대한 존경심과 호감이 생겨 이후 난관이 있을 때마다 현대 편에 서게 되었다.

스베트라야 임지를 돌아볼 때는 헬기로 왕복 7시간에 현장답사 등 강행군 속에서도 창밖에 펼쳐지는 산림지역을 보며 깊은 관심을 보이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현대의 산림개발 합작사업은 순조롭게 출발하다가 구소련의 붕괴 소련측 고위직의 경질로 벌목합작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고 환경단체들의 거센 항의, 정 회장의 정계진출 등 여러 사유로 중단되어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현대의 산림개발사업을 계기로 북양재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현재 연간 도입량의 20%선을 점유하며 수입선 다변화에 기여하고 있음에 위안을 느낀다.

처음 벌채규모를 30만㏊에서 300만㎥으로 확대하라고 해 극동에서 바이칼호수 일대까지 산림을 답사하던 일이 새삼스럽다.

우리나라 목재산업이 60년대에는 수출을 주도할 만큼 활발했었는데 원자재의 해외의존으로 늘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생각할 때 정 회장처럼 과단성과 강한 추진력이 뒷받침하면 목재산업에도 새로운 전기가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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