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지금 문명 진화의 진화궤도를 빛의 속도로 달려가고 있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인류에게 번영과 안녕을 가져다주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발전이 주는 이점들을 누리는 동시에 현대인들은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와중에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잃어가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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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트 가드너>는 모성의 대지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그 위에 드리워지고 있는 파괴의 암울한 기운을 그려내면서 ‘진보와 문명화’에 대한 역설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정원 가꾸기가 취미인 온화한 성격의 저스틴이 저돌적이고 열정적인 인권 운동가 테사를 아내로 맞는 것부터 평탄치 않은 사건이 올 것임이 예상된다.

그가 케냐 주재 영국 대사관으로 발령이 나면서 파국의 서막이 올라간다. 원시의 아름다운 대지 위에 살고 있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생활은 자연의 신비로움과는 대조적으로 너무나 처참하다.

문맹, 기아에 더하여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그들의 삶은 글자 그대로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기에 문명화된 세계에 살고 있는 이들이 겪는 의미의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테사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무리를 하여 유산을 하기에 이르고, 업무차 떠났던 여행길에서 급기야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다.

그녀의 사인을 알아내는 과정에서 저스틴은 진실을 들여다보게 되고 자신 또한 그 때문에 죽음을 맞는다.
영화는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위에 살고 있는 아프리카 인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시티 오브 갓’(2002)으로 1970년대 브라질 빈민가의 어둠을 고발해 주목 받은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시선은 섬세하고도 예리하게 아프리카의 실상을 화면에 담아냈다.

거기에 강대국의 포장된 논리와 탐욕이 제3세계를 죽어가게 하고 있음을 고발한다. 약을 타기 위해 의료 텐트 앞에 늘어 선 사람들, 백인과 흑인에 대한 차별적인 시료행위, 아무도 모르게 처리되어 버린 죽은 흑인 소녀를 통해 의료 행위를 가장하여 사람들을 약의 실험대상으로 삼는 거대 기업의 음모와 이를 덮고 국익만을 추구하는 강대국의 반인륜적인 행위가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콘스탄트 가드너>는 테사와 저스틴의 부부애을 중심으로 착취당하고 있는 아프리카와 상실되어 가는 인간애 그리고 보장받아야 할 인권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다.
냉철하고 객관적인 수많은 보고서나 논문보다 더 통렬하게 가슴을 후벼드는 이 영화에도 몇 가지 아쉬운 점은 남는다.

테사와 함께 봉사활동을 펼치고 끝내는 잔인하게 죽음을 당한 흑인 의사가 동성애자로 설정된 점(이것이 그녀가 남편에게 충실했음을 보여주는 반증으로 연결시키기에는 그다지 석연치 않다), 잔인한 청부 살인을 일삼는 같은 아프리카인들, 결국 사건을 해결하고 경종을 울리는 백인이 그것이다.

음모론을 떠올리면서 마음의 파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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