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4월 5일, 그날은 식목일이었다.
설봉은 아침 일찌기 천우사 사원들 130여명과 함께 버스를 타고 난지도로 나무를 심으러 갔다. 설봉은 그 당시 한국포플러협회 회장으로 있었다.

서울 YMCA 가 난지도에 소유하고 있는 땅 약5만평을 한국포플러협회가 세를 얻어서 그곳에 포플러 양묘를 하고 있었다. 설봉도 1964년에 이곳에 약6천평을 사두었는데 이날은 이곳에 포플러를 조림하기 위해서 갔던 것이다.

설봉은 그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봄 바람과 더불어 일기가 화창하니 기분이 한결 상쾌하였다. 번잡한 시가지의 소음에서 벗어나 한가한 시골길을 달린후 강을 건너느라고 3척의 목선에 분승하였는데 더러는 큰 배에 더러는 작은 배에 나눠 탔다.

작은 배에 탄 사원중 한 사람이 배가 흔들리는 바람에 물에 빠졌다. 그것을 본 사원일동은 한 바탕 웃었다. 나도 따라서 웃었으나 문득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천우사라는 배는 과연 어떤 배일까? 안심하고 탈 수 있는 큰 배일까? 또는 아무리 흔들려도 좀 처럼 떨어지는 사람이 없는 튼튼한 작은 배일까?

직장이 있느니 없느니, 좋으니 나쁘니 해도 대한민국 안에서 골라잡아 탈 배가 많을텐데 천우사라는 배를 골라잡아 탄 사원들이 그지없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 그 배를 피안에 도착할 때까지 몰고 가는 나의 책임도 중하다는 것을 느겼다.

한국포를러협회에서 이 난지도에다 양묘한 이탈리아산 포플러묘목 수백만주를 전국 각지에 배포하였는데 메마르고 벌거벗은 이 강산이 조금이나마 푸르게 될 것을 생각하니 그지없이 기쁘다. 돌아오는 길에는 목장에 들려 소, 닭, 돼지 등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었다.

거기에는 우리나라에서 우리만이 하고 있는 일이 있다. 브로일러 치킨도 처음이요, 덴마크 소의 정액을 비행기로 실어다 한우에 교배시키는 일도 우리가 처음 시도한 사업니다. 이 시도대로라면 우리나라 100여만 두의 재래종 소가 젖소로 개발되어 낙농국가가 될 것이다.

일본은 현재 젖소가 100여만 두인데 우리나라는 1만 두가 미쳐 못되고 있다. 국민 영양상 필요는 말할 것도 없고 대외무역수지관계, 비료문제 등에도 큰 혁신이 생기지 않을가 생각한다.
하루종일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이런 꿈을 그려 보았다.

오늘 심은 포플러가 자라면 바람도 맞을 것이고 서리도 맞을 것이다. 그러나 그 씩씩한 성질을 살려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따뜻한 햇빛을 받아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그러면 이 강산은 푸른 잎으로 덮히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물들이고  그리고 나서는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유용한 재목이 될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젊은 사원들도 오늘 심은 저 포플러처럼 모진 풍상을 겪더라도 그 본래의 타고난 양심과 고귀한 이상으로 이 사회를 발전시키고 윤택케 하여 이 나라의 비참한 현실을 타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중요한 인물이 될 것이다.

저 포플러가 용재가 되는 것을 내 생전에 못 볼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젊은 사원들이 그런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못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세대가 못한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부탁하고 싶은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글/ 김상혁  shkim@woodconsult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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