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도 하나의 생명체다. 혼이 없는 기업은 생명이 없는 기업이기 때문이다.”선창산업의 정해수(77세) 회장의 말이다.선창산업은 지난 1959년 창업, 45년 간 끊임없는 변화와 격동 속에서도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자만하지 않으며 겸손한 자세로 의연히 합판업계를 지켜가고 있는 기업이다. 정 회장을 회장실에서 만나 그의 사업관과 기업의 성장배경을 들어봤다. 성창기업은 우리나라 합판산업을 일으킨 기업으로 알고 있는데 태동기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선친께서 일제시대 때 봉화에서 삼척탄광에 갱목을 납품한 것이 목재사업의 시작이었다. 합판공장을 한 것은 해방 후인 1948년으로 대구에서다. 일본인 기술자가 만든 합판기계를 사서 대구에 합판공장을 세운 것이 합판사업의 시작이었다.그때는 춘양목으로
인도네시아 합판을 한참 많이 수입할 때는 한국 합판수입 물량의 20% 정도를 수입했다는 판 패시픽 김병흠 사장을 찾았다. 최근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오르고 있는 인도네시아 합판 가격의 인상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그 이유를 들어 보았다. 최근 인도네시아 합판가격이 오르고 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 (기자의 질문을 받은 김병흠 사장은 자기 책상으로 가더니 며칠 전에 들어온 이메일 한 장(2월 18일자)을 프린트해서 탁자에 올려놓는다.E-mail에 적힌 연도별 벌채허가량 계획표에는 2002년 1천200만㎥, 2003년 680만㎥, 2004년 570만㎥, 2005년 540만㎥로 벌채허가량이 계속 줄어드는 것으로 돼 있었다.)인도네시아 정부가 벌채허가량을 계속 줄여 나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인도네
삼산실업 김광채 사장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동업 사장인 김낙기 사장의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다.“그거 좋지요”하며 쾌히 김낙기 사장을 바꿔준다. 김낙기 사장은 선뜻, “제가 뭐 할말이 있어야 지요”하며 겸손해 한다.2월6일 기자가 김낙기 사장을 찾아 삼산실업 정문에 도착했을 때 커다란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 한대가 정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합판을 부리고 나가는 모양이었다.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김낙기 사장과 김광채 사장이 반갑게 기자를 맞이한다. 과거 대성목재에 같이 근무했던 관계이기 때문이다. 사업을 시작한 때가 언제인가요? 그때 개업식에 참석했었는데 ….김 사장이 삼산실업의 창업초기의 아득한 기억을 떠올린다.“87년 10월입니다. 그때 연안부두 대한창고 옆에 조그만 사무실 하나를 얻어 여직원 한명
2003년 가을, 최덕용씨는 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으로부터 가구회사를 상대로 경영에 대해 전문컨설팅을 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정관리분야 명장으로 선정됐다.목수의 길로부터 시작된 가구인생은 그를 연매출 120억원 이상의 중소가구업체 최고경영자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했었다.전문경영컨설턴트로서 지난 40여년간 축적된 노하우를 가구산업의 안정과 후진양성에 힘쓰고자 하는 공정관리부문 최덕용명장을 만나보았다. 인생의 돛이 된 자립심 교육 만주 북간도가 고향인 최덕용명장은 1945년 8월15일 해방당시 고아가 돼 부산의 애린유아원에 입소하게 됐다.“미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던 곳에 예닐곱살 때 전쟁고아로 입소했는데, 어린시절의 교육이 나를 참으로 강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스스로 자고난 자리를 게고, 청소와 설
국산재 시대는 대비,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면.산림의 다양한 가치와 편익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산림자원의 조성과 육성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또한 다양한 수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연과 조화되는 산림관리 개념(Forestry in Harmony with Nature)의 정착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지 숲의 가치를 올리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자연환경을 유지 보전하면서 생태계의 중심체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일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숲의 모습은 어떤가.우리 숲은 국토의 2/3를 차지하고 있어 국토관리 면에서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숲은 1970년대부터 실시한 치산녹화기를 통해 연료 녹화수종 위주의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하면서 해외 업체들의 중국진출 또는 중국과의 제휴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국내 목재 제조업체들도 중국 현지 공장을 설립하거나 중국 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중국산 목제품을 수입하는 등 다각적인 협력을 모색 중이다. 그러나 중국으로의 목제품 수출은 보드류 이외에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지난 11월 대현종합목재에 20만불을 투자하고 한국산 도어의 수입을 검토중인 중강전자유한공사의 심강화(Shen Jiangi Hua) 총경리를 만나 중국의 목재시장과 향후 한국과의 협력 방안에 대해 들어 보았다.-중강전자유한공사는 어떤 회사인가.전화기 부품을 만드는 회사로 제품은 전량 중국 내수 시장에 공급하고 있는 회사다. 목재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회사이지만 한국의 목제품 품질이 우수해 투자를 결
원숭이해인 갑신년을 맞이했다. 원숭이는 재주가 많으며 우리와 친숙한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 동물중 인간과 비슷한 습성과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원숭이에 대한 분석 자료에 의하면 원숭이는 정의에 대한 의식과 인간처럼 목소리와 얼굴 표정을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원숭이 해를 맞아 원숭이 띠인 나무와 삶의 박찬규 대표(56년생), (주) 청지기 합판의 김원일 대표(56년생), 나무목의 이충희 대표(68년생)를 만나 올해 포부를 들어봤다. “직원의 행복과 건강”나무와 삶 박찬규 대표 박찬규 대표는 올해의 꿈이 뭐냐는 질문에 ‘직원의 행복과 건강’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직원이 행복하고 건강해야 회사가 바로 설 수 있고 목조건축의 미래가 밝다는 것이다. 이에 따
한국의 목조주택 산업은 펜션의 호황에 힘입어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전까지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주택시장만을 눈 여겨 봐왔던 해외 목재 산지에서도 점차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갖게 됐다.이러한 추세에 맞춰 한국의 목조주택 시장 조사를 위해 지난달 29일부터 5일까지 방한한 캐나다 주택공사 국제부(CMHC International) 한국 담당인 글렌 웹씨를 만나 한국 목조주택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점쳐 보았다. 한국 방문 이유는.이번이 두 번째 한국 방문이다. 이번 방문은 한국 목조 주택 시장이 성장세를 보임에 따라 한국내에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 이뤄진 것이다. 한국 내에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캐나다의 주택 관련 업체들의 한국 진출이 보다 용이할 것으로 기대된다. 동시에 한국의 유수한 목재 관
한국가구학회는 지난 1989년 가구재료분야의 산학 협동 및 친목을 위해 설립된 후, 1996년 가구디자인분야와 함께 하면서 소재와 디자인의 두 가지 측면에서 다양한 학술연구 병행하고 있으며, 학계와 업계간 기술정보 교환의 장으로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는 비영리단체다.올 봄 한국가구학회장에 선정된 민찬홍 회장을 만나 학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향후 계획을 들어 보았다. 취임 후 한해를 돌아보며 한국가구학회(The Korea Society of Furniture Design and Technology) 민찬홍 회장은 지난 4월 개최됐던 2003년도 춘계학술대회 및 총회에서 학회의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지금까지 학회를 바로 알고 재정비하는 부분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것 같다며 간단한 소감을 밝혔
국내에 통나무 건축물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기도 전인 80년대 말 캐나다 앨런 매키 통나무건축학교에서 통나무 건축과정을 수료한 유재완 교장은 당시에 함께 교육을 받았던 이들에게 한국의 앨런 매키가 되겠다며 국내 통나무주택 교육에 앞장 설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95년, 8년만에 우림 통나무 건축학교를 설립하면서 그 약속을 지켰다.우림통나무 건축학교 유재완 교장의 통나무 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통나무건축학교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74년부터 82년까지 9년정도 목재사업을 하면서 항상 건축가가 되고자하는 꿈을 잃지 않았다. 그러던 중 82년 대학 후배의 소개로 서울에 방문한 웰트 머리(Walt Murray)라는 캐나다 통나무 건축업자를 만나게 됐다. 당시 건축과 목재에 상당부분 경력을 갖추었고 영
건축사 사무소에서 출발해 목조주택 시공분야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한 머릿돌의 이정현 대표는 건축분야에서 잊혀져 가는 나무의 존재가 늘 아쉬웠단다. 벽돌과 콘크리트로 지어진 주택, 현대 주거문화의 대표격인 아파트는 왠지 모르게 삭막하다. 고향을 생각하면 떠오르던 이미지의 집을 짓겠다는 그의 꿈은 목조주택으로 승화됐다. 머릿돌 이정현 대표와 목조주택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주거형태 바꾸기 "건축하는 이들에게 나무가 잊혀져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집은 나무가 근간이 됐었지만 이를 기억하고 되살리려한 건축가가 드물었던 겁니다. 산업화의 영향으로 국내에는 콘크리트 일색의 주거문화가 자리잡은 지 이미 오래입니다. 그러나 미국, 유럽 등지에서는 목조주택에 대한 선호도가 높고
잘 정리된 명함집 일곱 권이 가장 큰 재산이라는 정재갑 사장의 이력은 매우 단촐하다. 한회사 한 부서에서만 23년을 근무하고 5년전 우창합판을 설립했기 때문이다. 정 사장은 이건산업에 입사해 합판 영업부서에서 최말단 사원부터 시작해 부서장까지 역임한 인물이다. 이건을 퇴사한 지 5년이 지났건만 그의 영업에 관한 일화들은 아직도 합판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심지어는 그가 처음 만나는 이들도 이건의 정재갑을 알고 있어 머쓱해진다는 그가 합판 영업직에 종사하는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영업전략과 그의 영업에 관한 일화를 들어보자. 합판 영업계의 별종정재갑 사장은 이건산업에서도 별종으로 불렸다. 정 사장은 별종이 많은 회사, 그리고 그런 별종들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많은 회사가 발전할 수 있는 회사라고 말한다. 그
국내 경량목조주택의 역사도 10년이 됐다.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 10년 전 일산신도시에 목조주택 단지들이 생겨나면서 자리매김을 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통나무 주택을 비롯한 목조주택들은 오래전부터 국내에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고급 별장이나 외국에서 살다 귀국해 들어온 사람들의 집들이 있을 뿐 목조주택이 어떤 건축의 일부시장을 형성하지는 못하고 있을 때였다. 그 후 지금까지 10년의 목조주택 역사를 한가운데서 함께해온 사람이 있다. 물론 그는 그 이전에도 목조주택의 역사를 시작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지금은 인하전문대학교의 건축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으며 목조주택전문 설계사무소 "미추"의 대표인 송재승 씨를 만났다. 89년 시작한 목조주택 단지설계 송교수가 처음 목조주택을 설계한 것은
제지, 펄프의 수입부터 목조주택자재의 취급까지 리-부라더스는 임산물의 시대적 쓰임새에 발맞춰 기업아이템을 변화시켜왔다. 50여 년의 기업이미지를 한결같이 지켜온 리-부라더스의 신용은 국내에서보다 선진임업국에서 더욱 알려져 있다.현재 우리나라 목조주택자재를 선점하고 있는 캔포의 에이젼트 리-부라더스를 찾아 기업의 장수비결을 물어보았다. 전문경영인을 위한 준비1968년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리-부라더스에 입사할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현실적인 경영을 준비하기에는 많은 부족을 깨닫게 되면서, 전문 경영과정을 이수를 준비하게 됐고, 5년 만에 미국의 뉴욕대학에서 MBA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마케팅과정이 끝날 무렵인 1973년의 미국은 더 이상 기회의 땅은 아니었다. 코리안드림을 안고 그곳을 찾았던 한
지난달 22일 대전종합청사 산림청에서 지난 3월4일 취임한 최종수 산림청장과 본지 발행인 윤형운 대표가 대담의 자리를 갖고 목재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과 지원, 및 업계의 발전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대담의 내용을 들어보자.편집자주 윤형운 발행인 산림청이 올해 가장 중점을 두는 사업 중 목재와 관련된 것이 있다면.최종수 산림청장산림청의 다양한 산림사업 중 목재와 관련된 것은 금년부터 산지목재비축제도를 시범적으로 추진하는 것과 목재 및 목제품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목재제품 야외전시장 조성을 위한 연구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것 등입니다. 또 임산바이오매스(폐잔재 및 간벌재를 이용한 난방시스템) 활용 시범사업을 위한 기초조사 등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습니다.윤형운 발행인 얼마전 캐나다를 방문한
역사는 유물과 유적이 되어 이른바 문화재란 이름으로 오랜 세월을 버티며 오늘날 우리의 과거, 즉 뿌리를 가르쳐 주고 있다. 수많은 유물과 유적들 하나 하나가 무엇을 증명하고 있는지를 묵묵히 규명하고 있는 곳이 바로 국립문화재연구소다. 3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고있는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을 역임하며, 전통건축물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있는 김봉건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을 만나 보았다. 문화재연구소와의 인연 1978년 건축학을 전공했던 김봉건소장은 같은 해 기술고시를 통해 상공부에 첫 취업을 했지만, 이듬해 군복무를 위해 해군시설본부에 들어가고 제대 후 상공부에 복직한 뒤인 1983년에 문화재연구소와 첫 인연을 맺게 된다.김 소장의 대학전공이 건축학이었으므로, 수많은 문화재 중에서도 당연히 건축물문화재에 관심이 컸다.
몇 년전부터 목조건축물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반대로 목조건축협회는 쇠퇴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것이 우후죽숙으로 업체들이 늘어나면서 심각한 단가경쟁이 초래됐고 이 과정에서 협회를 떠나는 업체들이 늘어났던 것이다. 이에 뜻있는 목조건축 관련 업체들이 올해를 기점으로 협회 재건에 나섰다. 물론 그 선봉에는 이경호 신임회장의 공이 컸다. 올해 초 13개에 불과하던 회원사가 현재 32개로 늘어났고 산림청 관계자들과 함께 제주 목조건축시설물을 둘러보고 목조건축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답변까지 들었으니 일단은 성공적이다.앞으로 협회를 위해 할 일이 더 많다는 이경호 회장에게 한국목조건축협회의 당면과제와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협회의 설립 및 현황은.올해로 8년째다. 96년 설립돼 97년 등기를 마쳤
목재인이면서 탈목재를 꿈꾸는 사람, 아니 정확히 말해서 목재와 목재가 아닌 산업과의 조화를 모색하는 사람이 있다. 포장재 전문 생산업체 범진산업(주)의 권중덕 사장은 한마디로 괴짜다. 오랫동안 목재일을 해온 이들은 대부분 다른 분야를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지만 그는 3년동안 컴퓨터와 인터넷과 씨름해 그럴듯한 홈페이지들을 만들었고 회사 내에 정보통신 관련부서를 만들었다. 전통산업 중에서도 굴뚝산업의 대표격인 목재계에서 나온 발상이라는 것이 의아할 정도다. 74년 광명목재 입사 이후 시작된 그의 목재산업 경험담과 새로운 시도에 대해 들어보았다. 부지런함은 경영자의 기본 인터뷰를 위해 범진산업에 전화를 걸었을 때의 일이다. "몇시에 만나 뵐까요?"라고 묻자 대뜸 오전 6시도 좋고 7시도 좋단다. 도대체 몇시
미술계 입문 초기에는 순수미술을 통해 자연을 화폭에 그려냈지만, 대학시절 공예과로의 전과 후 지금껏 단 한번도 외도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람. 자연을 주제로 공예활동을 펴 온 최승천 교수는 지난 30여 년 동안 새와 나무라는 한결같은 주제로 일관된 예술세계를 지켜 온 우직한 파수꾼이었다.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로 현 나무샘 고문을 역임하고 있는 작가 최승천을 만나 목공예로 승화된 그의 예술세계를 엿 볼 수 있었다. 우리의 얼굴을 찾아 유구한 역사 속에서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맥을 이어 온 우리나라. 21세기를 걷고 있는 우리의 참된 얼굴은 무엇일까?처음 만난 그가 던지는 이 한마디 질문에서 지금 우리 문화가 봉착한 당면과제가 무언지 직시할 수 있었다. 그 것은 단지 예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목재산업계와 임업연구원을 논하는데 있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국내에 해방이후 최초의 목재산업이 뿌리를 내리던 그 현장에서부터 목재합판이 수출 제 1종목을 과시하던 때에도 항상 그 한 가운데 서있던 사람이 바로 조재명원장이다.조재명 전 임업연구원장은 지금은 현직에서 물러나 있지만 그가 남긴 큰 발자취는 우리나라 임산업과 목재업의 근원이 시작된 그 어느 곳에도 항상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몇몇 주변사람들의 부탁으로 몇 개 단체의 의 원장직을 맡고있다. 아직도 현직 밖에서 목재산업계의 발전을 위해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조재명 전 임업연구원장을 만나 지나간 반세기의 우리나라 목재산업계의 예기를 들어보았다. 전쟁의 잔재속에서 시작된 임학과의 인연 조재명원장은 휴전협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