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시대 논농사

유적 2 0 0 6년 경상북도안동의저전리에서국내에서처음으로청동기시대의저수관련유구 가발견되었다. 이로서청동기시대전기의사람들도저수지를만들고그물을관개하여농 사를지었다는사실을알게되었다. 유적조사의초기단계에는저수지가아닐가능성이제 기되기도 하였으나, 조사가 확장되면서 출수구(出水口)와 입수구(入水口), 관개수로 등이 뚜렷하게확인되어청동기시대의저수지임이분명해졌다.

저수지 바닥에서는 다량의 무문토기(孔列土器, 丹塗磨硏土器등)와 함께 석검편, 석촉 편, 미완성 석기, 석기박편 등이 출토되었다. 출수구(出水口) 쪽에서는 보(洑)시설의 잔재 가출토되었다. 저수지가폐기된후가장자리를따라가면서시설된것으로보이는관개용 수로도 발굴되었다. 수로상에서는 또한말목류를포함한용도미상의 목기와 목재류가 출 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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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상의 물웅덩이에서는 참나무로 만든 절굿공이 한 점이 출토되었는데, 크기는 길이 151cm, 지름 9 c m이며중간에2개의돌기가있다. 저수지출수구주위에서출토된목기에 는구멍이뚫려있으며목제따비일가능성이높은것으로보고있다. 절굿공이가출토된웅 덩이속의흙속에서는도토리, 솔방울, 박(瓢) 씨등각종야생종자류와함께탄화미와벼껍 질이다수출토되었다. 박씨는수로주변의제사용토기주변에서집중적으로출토되어제사 와관련이있을것으로추정되었다. 특히탄화미와벼껍질은청동기시대도작농경사회의생 활상을보여주는중요한증거이다. 이저수지는함께출토된토기나 석검등으로보아기원전 7 ~ 8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절구공이가 출토된 국내유적 으로는 초기철기시대의 대표적인 저습지유적인광주 신창동유적(기원전 1세기)이 있고, 일본에서는 기원전 4 ~ 3세기의유적에서 목제절구공이가 더러보고된바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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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전리유적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전기에 살던 사람들이 이미 저수지를 축조하고반월형석도로수확을하였으 며, 절구로 정미하여 음식을 조리하면 서 살았음을 증거하는 중요한 유적이 다. 지금까지 인공으로만든 가장오래 된 저수지는서기 3 ~ 4세기 경의 김제의벽골제(碧骨堤)나 의림지(義林池)의 기록이잘 알 려져 있다. 그러나 저전리의 저수지가 발견되어 한반도에서 인공저수지의역사는기원전 8 ~ 7세기까지1천년이나그기 원을거슬러올라가게되었다.

지구상에 등장한 인간이 수백만년의 채집, 수렵의 단계를 지나 최초로 식물을재배하기 시작한 과정은 당대의 첨단기 술이고 농업혁명이었다. 초기의 농경은 고지대에서 자연 강 우를 이용하였는데 점차강 주변의 비옥한 저지대까지 내려 왔다. 세상을뒤흔드는경제난국의소용돌이중에다시생각 하게 된다. ‘가치’의 원천은‘노동’이며, 그 노동은 생존을 위하여서만이아니라자아의실현을위한과정이기도하다. ‘苧田’은‘모시밭’이니저전리는모시밭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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