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_View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에는 몽고군의 침략에 최후까지 항쟁하던 삼별초(三別抄)1)의 유적지로서 ‘항몽 유적지’가 있다.

1231년부터 40여년 동안 일곱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공한 몽고에 대항하던 삼별초가 1271년 진도에서 여·몽 연합군에 패전한 후 김통정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제주로 들어와 끝까지 항전한 유서 깊은 성터이다.

고려 원종11년(1270) 2월 고려 조정이 몽고군과 강화를 맺고 강화에서 개경으로 환도하자, 이에 맞서 고려 김방경과 몽고의 흔도가 이끄는 여몽연합군에 최후까지 항쟁하다 원종14년(1273)에 전원 순의한 삼별초의 마지막 보루이다.

15리에 걸쳐 토성으로 외성을 쌓고 다시 석성으로 내성을 쌓아 이중으로 성곽을 구축한 형태로 관아와 궁궐까지 갖추고 있었다 한다. 그러나 결국 이곳에서 삼별초의 이름은 막을 내리게 됐다.

이 항파두리(缸坡頭里)토성은 삼별초군이 진도에 용장산성2), 남도석성3)을 쌓고 주둔하며 활동하다가 여몽연합군에게 패배하고, 같은해 9월에 제주도로 입도하면서 군사력을 재정비하는 시기에 축성된 토성이다. 항파두리 토성은 해발 약 190~215m에 위치하고 있다. 제주도의 북쪽 귀일리 해안과는 2.6km 내륙으로 들어 온 위치이다. 토성의 동편으로는 고성천이라고 불리우는 건천이 있고 서편으로는 소앵천이라고 불리우는 건천이 있다.

지형은 남고북저를 하고 있는데 북쪽인 경우 토성부근이 급격한 경사를 이루고 있고 동쪽은 완만하나, 서쪽은 단애를 이루는 하천을 두고 있어서 성을 쌓기에는 천연적으로 적합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지형을 이용하다 보니 성의 둘레는 6km에 이르고, 길이는 남동과 북서쪽으로 가장 긴쪽이 약 1.5km, 남서와 북동으로는 가장 짧은쪽이 664m로 타원형 모양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 삼별초군의 대몽항쟁을 기념하기 위해 1977~1978년까지 9천여평의 대지에 항몽순의비를 세우고 6km의 토성 중 922m를 복원해 놓은 곳이 제주도의 항몽유적지 이다.
유물로는 삼별초군이 궁술 연습시 과녁으로 사용했던 ‘살맞은 돌’과 ‘돌쩌귀’. 김통정 장군이 성에서 뛰어 내린 발자국이 패여서 사시사철 샘물이 솟는다는 ‘장수물’등이 있다.
이에 더해 1993년에는 이 성의 북쪽 바깥에서 당시 삼별초군의 식수로 이용됐던 우물터가 발견되었다.

제주에서는 물을 저장했던 이 목구조물을 ‘구시’, ‘구시통’이라 하고 이 우물을 ‘구시물’이라고 한다. 토성 밖인데도 또 작은성을 쌓고 구시를 만들어 병사들과 인근주민의 이용수로 사용했었음을 알수 있다.

지금은 구시물 주위에 쌓았던 성이 흔적만 남아 있고 구시가 돌로 대체돼 있으나, 이 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질 좋은 생수이며, 그 옛날 호역(虎疫, 콜레라)이 돌 때에도 이 지역은 한 사람의 희생자도 없었다고 구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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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별초
고려의 무신정권기인 1219년(고종 6년) 최충헌(崔忠獻)의 정권을 계승한 최우(崔瑀)가 방도(防盜) 등 치안유지를 위해 설치한 야별초(夜別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별초란 용사들로 조직된 선발군이라는 뜻이다.

그 뒤 야별초에 소속한 군대가 증가하자 이를 좌별초·우별초로 나누고, 몽고병과 싸우다 포로가 된 후 탈출한 병사들로 신의군(神義軍)을 조직, 이를 좌 ·우별초와 합해 삼별초의 조직을 만들었다.

삼별초는 무신정권의 전위(前衛)로서 다분히 사병적(私兵的)인 요소도 있었으나, 항몽전(抗蒙戰)에서는 그 선두에서 유격전술로 몽고병을 괴롭혔고, 무신정권이 무너지고 몽고와 강화(講和)가 성립되자 반란을 일으켰다.

2) 용장산성(龍藏山城)
진도 동북방의 벽파 나루와 서낭산의 주변에 솟은 산지와 안부(鞍部)를 따라 연장 12km 이상의 거대한 도성지가 있다.

용장리와 벽파리의 거의 전체를 감싼 고려 시대의 석축과 토축으로 된 산성으로, 현재 해발 264m의 용장산 좌우의 능선을 따라 약간씩의 석축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고, 성내에 용장사지(龍藏寺址)와 행궁지(行宮址)가 남아 있다.

성벽은 서벽이 토성으로 이어져 벽파진 북쪽의 바다에까지 닿아 있다. 축성 연대는 1270년 6월 이후이며 몽고 칩입시에 강화도에 있다가 몽고와 강화하고 개경으로 천도하는 정부에 대항해, 휘하의 삼별초군을 이끌고 진도로 옮긴 배중손(裵仲遜)이 이끄는 삼별초 정부의 대몽항쟁의 근거지였다.

삼별초는 이곳에서 부서(部署)를 정하고 관부(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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