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 산의 나무로 합판 생산이 가능한지, 아니면 어떤 이유로 합판생산을 못하는 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며 합판설비 전문가로써 일본 합판 제조역사와 환경 그리고 제조 기술 사항들을 살펴보았다.

우리도 우리 땅의 나무로 만든 국산재 합판을 만들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바라는 바람에서 이 글을 작성했다.

 

2021년 남양재 합판 제조 90년 역사가 끝났다

사진 1 수입한 후 바다에 보관 중인 남양재 원목.

동남아산 라왕 원목을 수입해 마루 대판이나 프린트 합판 등 특수 합판을 만들던 대신합판공업(大新合板工業)이 2021년 3월 말 일본 합판 업계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일본이 연간 수입한 남양재 전체 원목(사진1) 중 53%를 사용해 최근까지 합판을 만들던 회사는 결국 문을 닫았다. 이때 일본 남양재 원목 수입량은 12천㎥이었다. 이 회사는 마지막까지 살아남기 위해 고전분투했지만, 국산재 침엽수를 활용한 합판으로 전환되는 시대적 흐름은 막을 수 없었다. 1931년 최초로 남양재 합판생산 후 90년 만에 마지막 남은 이 합판공장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년전 37%였던 침엽수 합판생산은 오늘날 97% 상회

재빠르게 수종 전환했던 일본 30개사 합판 공장은 2021년 317만㎥ 합판을 생산했으며, 이중 국산재 침엽수 원목을 활용한 합판생산량은 309만㎥이다. 20여 년 전 2000년, 일본 국산재 합판 생산량은 86만㎥였다. 당시 침엽수 합판생산 비율 39%였던 것에 비해 20년 만에 현재 97%를 넘었다.

일본에서 침엽수 합판생산 비율이 100% 달성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합판제조업계는 동남아 수입 남양재 원목 가격이 저렴하고 가공성이 뛰어나 장기간 사용해왔다.

1980년대부터 산지에서 남양재 원목 수출 규제를 공식화하면서 서서히 국산재 침엽수 원목을 사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침엽수 원목 절삭가공 기술, 건조 그리고 접착제 연구가 미미했던 이유로 대부분의 공장에서 국산재 침엽수를 합판 용재로 사용하는 것을 기피(忌避)했다. 이로 인해 수령 40~50년을 넘긴 경제림마저도 벌목되지 않고 방치됐다. 그 결과 자국 산림 자원이 점점 노령화되고 사용 가치도 현저하게 떨어졌다. 안 되겠다 싶은 정부나 민간기관 그리고 합판 설비 제작사는 서로 한 팀이 되어 침엽수 사용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후 10년이 지난 1990년 초부터 합판 용도나 제조 기술 모든 면에서 안정적으로 정착된 역사를 일본은 가지고 있다.

 

일본, 100여 년 전 1907년부터 합판제조 시작

사진 2 관동대지진으로 파괴된 동경 건물들.
사진 2 관동대지진으로 파괴된 동경 건물들.

일본 나고야에서 1907년 로타리 레이스(ROTARY LATHE)가 개발돼 합판생산 공장 기계화가 이루었지만, 미국이나 유럽보다 합판을 본격적으로 만들었던 시기보다는 상당히 늦었다. 일본은 합판제조 기술력이 떨어져 미국으로부터 받침목 용도의 형틀용 합판을 대량 수입했다, 1919년 당시 홋카이도(北海道)에는 천연림(天然林)이 많았다. 이 천연목(天然木)을 이용한 일본 최초 근대적 합판 공장을 홋카이도에 세웠지만 대량 생산할 만한 규모는 아니었다.

하지만 (사진2)와 같이 1923년 9월에 10여만 명 이상이 사망한 관동대지진(関東大震災)이 발생해 파괴된 가옥만도 20여만 채 이상 됐다. 이를 복구하기 위해 많은 목재뿐 아니라 합판이 필요하게 되면서 일본 합판 공장은 사상 최고의 합판 성장 부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때만 해도 일본은 합판 용재로 북미(北美)로부터 미송(米松)이나 적삼목(赤杉木)을 수입해 합판을 만들었다. 1931년부터 해외로부터 남양재 라왕 원목을 대량 수입하면서 합판 용재로 사용이 본격화됐다. 이 시기 일본 합판생산은 관동지진 복구작업과 맞물리면서 사상 최고로 합판생산이 증가했다. 1935년에 이르러 형틀용 합판은 현대적 형태로 두껍게 개발되었다.

사진 3 일본 초창기 합판 공장.
사진 3 일본 초창기 합판 공장.

(사진 3)은 일본 초창기 합판 공장 사진으로 그 당시 콩풀, 아교 등 천연 접착제를 사용했던 합판은 접착력 문제로 합판이 갈라지고 벌어지는 등 품질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한 것은 1950년 요소계(尿素系) 접착제가 개발·사용하면서 합판 접착력 품질이 향상되어 벌어짐이나 갈림 현상은 완전히 해소됐다. 합판 내수성(耐水性)과 내구성(耐久性)이 확보되면서 건축재로 활용되는 등 용도가 대폭 확대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1982년 필리핀, 원목 수출 금지하다

합판 품질이 향상되면서 건축재용도 사용이 증가하면서 1953년 일본 농림성(農林省)은 합판 및 단판 품질을 정부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일본 농림 규격(JAS)을 제정하여 합판 등 목재제품 품질 등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일본은 합판 생산량 세계 3위, 합판 수출량 세계 2위 합판 강국이 되었다. 1955년에는 접착력이 한층 보강된 합판을 개발해 건축용재로 사용 가능한 형틀용 합판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당시 형틀용 합판은 중판(中板)이나 코어(CORE) 베니어에 사용한 원목은 라왕이며 갑판과 을판은 피나무를 사용했다. 1950년대부터 합판 용재로 사용했던 주된 원목은 남양재 라왕으로 필리핀에서 수입했다. 필리핀은 1960년 후반부터 1970년대 전반까지 원목 생산량이 연간 1,000만㎥를 상회했다. 장기간 무분별 대량 과잉 벌목으로 필리핀 원목이 고갈되기 시작하면서 결국, 1982년 필리핀은 원목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이로 인해 일본 합판 제조사는 필리핀 대신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로 발길을 돌려 남양재 원목을 수입한다.

그러나, 설상가상 1985년 인도네시아도 가공 목재만 수출하는 원목 수출 금지를 하면서 세계적인 산림 보호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②에서 계속>

저작권자 © 한국목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