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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의 역사는 20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기원 후 42년 고대왕국인 가락국을 창건한 수로왕이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를 아내로 맞아 결혼을 함으로써 한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인 김해 김씨와 허씨의 시조가 된다.

 ‘금바다’라는 뜻의 ‘김해(金海)’라는 이름이 처음 불리우게 된 것은 500여년간 번창하던 가락국이 신라에 합병된 후 정치적, 군사적으로 요충지였던 이곳에 756년 신라의 작은 수도격인 ‘김해소경’이 설치되면서부터 였다고 한다.

이곳 김해의 장유면에서 지금의 관념과 시각으로는 그 용도를 알기 힘든 다양한 목기와 목조시설물이 발견되었다. 
장유는 오랜 역사의 향기가 깃들어 있는 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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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의 처남 허보옥이 허왕후를 따라 이 나라에 와서 이곳 장유산에 절을 세우고 오랫동안 머물러 돌아가지 않았다가 입적하여 장유불, 후세에 장유화상(長遊和尙)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곳이다.

이러한 연유로 장유촌의 이름이 생기게 되었던 곳이다.
이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의 초기에는 다리의 상판부로 보이는 넓은 판재가 발견되어 이 목조시설물을 부교(浮橋)로 추정하였으나, 계속되는 조사결과 부교라기보다는 사람이나 화물을 하역하기 위하여 해안가에 돌출하여 시설한 잔교(棧橋)로 판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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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잔교는 크게 교각과 상판, 그리고 상판하부의 가로걸침목과 세로걸침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잔존한 다리의 규모는 폭 180cm, 길이 24m 정도이며, 상판은 두 판재의 사이에 진흙을 채우거나 돗자리 같은 초본류의 직조물을 깔아놓기도 하였던 것이 확인되었다.

이 유적은 1600여년 전 가야시대의 해안가에 해당하는 곳으로서, 잔교시설(선착장)뿐만 아니라 다수의 건물지와 잘 정비된 도로망 등이 발견되어, 일반 개인이 아닌 공권력이 관리하던 주요시설로 추정하고 있다.

접안시설과 이어지는 지점에서의 도로는 길이 200m,폭은 6~8m에 이르는데, 노면에 콩자갈을 깔아 침하를 방지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도로가 지나가는 지형에 따라 흙을 덮어놓기도 하고 잔돌을 깔기도 하는 등 축조방식이 다양하다. 또한 도로에는 수레바퀴 흔적처럼 깊게 패인 폭 5~15㎝ 가량의 홈이 있고, 삼국시대의 토기 조각과 말 이빨 등이 출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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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발굴조사단은 “당시 운송수단으로 수레가 이용됐고,이 지역과 주변지역 사이에 빈번한 물적 이동과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며 “이곳이 건물 도로 우물 등을 포함한 마을과 선착장,고분군이 결합된 삼국시대의 복합공간으로서 이 시대의 지역적 특성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까지 고대의 선박이 발견된 사례는 수 차례 보고된 적이 있지만 배를 접안하기 위한 시설은 2000년 무렵 김해지역 봉황동 유적에서도 대규모로 확인된 바에 이어 두 번째이다.

봉황동에서는 해상왕국 금관가야의 최전성기인 4~5세 기대 항구임을 증명하는 단서가 확보된 바 있다. 봉황동유적 일대는 고대 항구가 입지하기에 적합한 지질환경이었으며 기둥위의 건물군은 해상교역과 관련된 창고 시설로 추정되었던 곳이다.

유적 발굴조사단에 따르면 “잔교의 너비가 1.5m밖에 안 돼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가야시대임을 감안하면 그다지 큰 선착장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현재의 잔교와 같은 고난도 공법을 이용한 점 등은 가야시대 교통사와 토목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며 “육해상 교통시설과 건물터 등이 결합된 복합 유적은 중국이나 일본에도 전례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유적을 포함하는 일대 56만여 평에는 모두 1만 3천여 가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지금 지어지는 집이 낡아 허물게 되기 전까지는 다시 땅 밑을 볼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고층의 집을 짓는 과정에서 통상 지하 3~5m의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은 깊이 박힌 기둥과 지하시설물들로 채워질 것이다.

기실 다시는 볼 수 없을 선조들의 삶의 흔적이 훼손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조사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러한 행위를 문화재 조사 중에서도 ‘구제발굴’, 즉 불가피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문화정보 만이라도 구제하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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