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나무재선충병은 우리 산림이 30년 넘게 겪고 있는 대표적 재난이다.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최근 5년간 피해목이 413만 본을 넘었다. 2024년 5월부터 2025년 4월까지 1년 동안만 148만 6천 본의 피해목이 발생했다. 3차 대확산기에 접어들었다. 정부는 36년 동안 약 1조 5천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피해목의 대부분은 여전히 소각과 파쇄로 처리된다. 그 결과 산림은 지켰을지 몰라도 자원은 잃었다. 이제는 전국적으로 재선충 피해가 나타나고 있고 항공방제를 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온상승의 영향이 가중돼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이제 방제와 자원순환을 병행하는 정책으로 바꿔야 할 때다. 예산의 적절한 배분이 필요하다. 재선충 피해목은 폐기물이 아니다. 소나무는 구조용재와 마감재로서 높은 강도와 내구성을 가진 자원이며, 적절한 시기에 수피를 제거하고 건조하면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소나무 재선충 피해목은 시급히 사멸 처리하고 제재해 건조하지 않으면 청변 발생으로 상품가치가 없다.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사안이다. 특히 마이크로파나 열처리 같은 사멸 기술이 실증된 지금, 감염목의 안전한 이용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문제는 제도다. 현행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특별법 및 관련 시행지침’에 따르면 감염지 반경 2킬로미터를 벗어나 피해목을 반출할 수 없게 막고 있다. 이로 인해 파쇄는 이동제한 예외로 허용되고 제재는 어렵게 되는 모순이 생겼다. 2000년대 초 제주도의 사례가 그 폐단을 보여준다. 당시 재선충병 확산을 막는다는 이유로 수령 100년이 넘는 대경 소나무 수천 그루가 일괄 소각되었다. 귀중한 자원이 행정 규제에 묶여 잿더미로 변한 것이다. 방제의 실효성보다 규제가 앞섰던 결과였다. 30년이 지난 지금, 제주도를 포함해 재선충은 여전히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동제한 규정이 실효적이었다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합리적 전환이 필요하다. 이동 반경을 확대해 열처리나 마이크로파 사멸 처리가 가능한 제재소·건조시설로의 이동을 허용하고, 사멸 처리 후에는 ‘사멸 확인서’를 발급받는 인증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방제의 실효성을 지키면서 자원순환을 병행할 수 있는 정책적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마이크로파 건조기는 재선충과 매개충을 60~80℃ 수준에서 1시간 내 완전 사멸시키며, 목재의 강도나 색상 변화가 거의 없다. 이 장비를 산림재해 대응 장비로 지정해 광역별로 순환 배치한다면, 현장 처리 효율을 높이고 대량 자원화를 실현할 수 있다.
재선충 피해목 또는 방어선 구축 차원의 조림전환 등으로 발생하는 벌채목 중에서 산업화 가능 물량은 지금 발생 추이로 보아 연간 20~30만㎥로 추산된다. 이를 구조용 집성재, 구조용 집성판, 내장재, 가구재 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하면 1,000억 원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약 20~30만 톤의 탄소를 장기 저장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경제 효과를 넘어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자원순환형 정책이다.
문제는 실행 속도다. 산림청은 여전히 방제 행정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재선충 사멸 기술을 활용해 피해목을 건축자재로 되살리는 체계를 하루빨리 제도화해야 한다. 방제와 산업화의 균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피해목을 다시 숲과 산업 속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진정한 복원이며, 그 과정이 곧 탄소를 저장하는 미래산업이다. 이제 산림청은 방제의 틀을 넘어, 자원 순환과 산업화를 아우르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재선충 피해를 넘어 대한민국 산림정책이 진정으로 진화하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