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F의 역사 Ⅱ

1987년, 당시 MDF의 국내 소비성향
우리나라 MDF산업의 초창기인 1987년의 MDF 연간 수요량은 15만㎥를 상회할 정도였다. 오늘날 연간 수요량 170만㎥에 비하면 아주 미미할 정도였다.
1986년 10월부터 동화기업의 MDF 공장이 가동하기 시작했으나 주로 5.5㎜두께의 MDF만 생산됐다. 1987년 MDF 수입량은 연 8만㎥정도였는데 수입 MDF는 주로 3.6㎜두께의 얇은 규격이 많이 수입됐다. 1987년 당시 MDF의 주요 소비처는 텔레비전 제조회사, 오디오 음향기기 제조회사 등이었는데 텔레비전 브라운관의 뒷판, 오디오전축의 스피커박스 제작 등에 주로 사용됐다. 사실 브라운관 TV의 뒷판이나 오디오스피커박스의 옆면, 뒷면 등에 사용되는 MDF는 강도가 그리 필요 없는 곳이라 굳이 5.5㎜두께의 MDF보다 얇은 3.6㎜의 MDF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굳이 30%나 가격이 비싼 5.5㎜두께의 MDF를 사용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1987년, 대성목재도 MDF 공장 건설 추진
1986년 1월1일, 대성목재를 효성그룹으로부터 인수한 유원건설(회장 최효석)은 당시 전두환 정부의 3저 현상(저금리, 저유가, 저환율)에 힘입어 인수 1년 만에 만년적자를 탈피하고 400억원이나 되는 흑자를 달성했다. 그러자 대성목재의 사장을 맡고 있던 이영기 사장(유원건설 최 회장과는 처남매부관계, 유원건설의 부사장 겸임)은 1987년 MDF 공장을 지을 것을 최 회장에게 건의했다. 유원건설 최 회장은 이영기 사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MDF 공장을 지을 것을 확정했다. 이영기 사장은 최 회장과는 처남매부지간이었으므로 여타 사장이 건의하는 것보다는 힘을 발휘했다고도 볼 수 있다. 1987년 당시는 국내 최초의 동화기업 MDF 공장이 가동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동화기업에서 생산되는 MDF는 5.5㎜두께만 생산됐다.
그러나 당시 MDF 수요자들은 5.5㎜두께보다 얇은 MDF(주로 3.6㎜두께, 수입제품)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MDF는 주로 강도가 그리 필요 없는 곳에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텔레비전 브라운관의 뒷면에 세로로 사용되는 등 강도가 필요없는 곳에 사용됐는데 굳이 가격이 비싼 5.5㎜두께를 사용하기보다 가격이 저렴한 3.6㎜두께(수입 제품)를 사용하기를 원했다.
이러한 MDF 시장의 흐름을 파악한 이영기 사장은 독일의 짐펠캄프(Simpel Kamp)社와 3.0~3.6㎜두께의 MDF를 만드는 기계 설비를 계약했다. 그리고는 1987년 말(12월), 인천 월미 합판공장 옆에 부지를 마련하고 160억원을 투자하여 MDF 공장건설에 착수했다. 이영기 사장은 당시 공무부장을 맡고 있던 윤승노 부장(고려대 임학과 졸업)을 이사로 승진발령하고 MDF 공장을 책임지고 짓도록 명했다.

1989년 10월, 대성목재 MDF 공장 가동
인천 월미도 대성목재의 월미 합판공장 옆 부지에 세워진 대성목재의 MDF 공장이 착공한지 1년 10개월만인 1989년 10월, 드디어 완공돼 가동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MDF 공장이 지어진 것이다. 독일 짐펠캄프社의 conti10m 프레스를 설치하여 주로 3.0~3.6㎜두께의 얇은 MDF만을 생산하는 일산 220㎥(연산 6만7000㎥)규모의 MDF 공장이 드디어 완공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운한 사건도 있었다. 당시 대성목재 MDF 공장 건설을 책임지고 동분서주했던 윤승노 이사가 많은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해 MDF 공장이 완공되기 직전에 작고했다.

1988년 6월, 청담물산도 MDF 공장 착공
동화기업 승상배 회장(1921년생, 당시 68세)은 자기가 1986년에 국내 최초로 건설한 MDF공장의 제품 5.5㎜ MDF가 시장의 외면을 받자, 독일의 짐펠캄프社에게 5.5㎜공장을 3.6㎜공장으로 개조해 줄 것을 의뢰했다. 그러나 짐펠캄프社는 일단 5.5㎜생산으로 Fix한 공장은 3.6㎜공장으로 개조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승 회장은 막내아들 승현준(1972년생, 당시 17세)을 위해 만들어준 회사 청담물산(부동산전문회사, 당시 대표 이정열)으로 하여금 3.6㎜두께 MDF전용 생산공장을 짓도록 명했다. 그리고는 동화기업에서 MDF 공장을 지은 경험이 있는 박영도 전무(서울대 입학과 졸업)를 청담물산으로 발령했다.
승 회장은 인천 가좌동에 3만3000평 부지를 마련해주고 내외자 194억원을 투입해 MDF 박판공장(Thin-MDF, 3.0~3.6㎜전용 생산공장)을 짓도록 했다. 그리고는 1988년 6월, 드디어 청담물산의 MDF 공장은 착공을 시작했다.

1989년 8월, 청담물산 MDF 공장 가동
1988년 6월 착공한 청담물산 MDF 공장은 일산 230㎥(연산 67,000㎥)의 규모로, 독일 짐펠캄프社의 최첨단 마이크로프로세스제어방식을 이용한 완벽한 연속 열압 시스템을 갖춘 conti 16m 연속 프레스를 갖추고 착공한지 1년 2개월만인 1989년 8월 가동을 시작했다.
착공은 대성목재보다 6개월 늦게 했지만 가동은 대성목재보다 2개월 빨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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